HOME                로그인

제23차 세계 청년대회
세계 청년대회에 다녀와서


강진기(안드레아)|신부, 제1대리구 청년담당

호주에서 개최된 제23차 세계 청년대회는 내 삶에 또 한 번의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청년담당을 하기 전까지 나는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의 신앙·문학 축제인 ‘세계 청년대회(World Youth Day)’가 있는지도 몰랐고, 더 나아가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줄도 몰랐다. 그런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사실 작년 한국 청년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준비하는 큰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나 준비 과정, 프로그램 진행이 작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내 능력이 많이 모자랐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큰 행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청년들에게 복음적인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밝혀주고, 그러한 삶을 실천하도록 가르치고 증거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10개월의 준비 끝에 대회 참가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 간 호주의 첫 인상은 ‘맑고 푸름’이었다. 푸른 초지와 아름드리나무, 맑은 하늘과 따가운 햇볕은 청정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 안에서 아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 같았다. 특히 대구교구를 비롯한 광주, 부산, 마산 안동 5개 교구 참가자 180여 명은 ‘교구의 날’ 행사 참가를 위해 브리즈번이라는 도시에 자리를 잡았는데, 도시 전체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리 잡은 모습은 각종 개발 열풍에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의 자연과 비교해 볼 때 가장 부러운 요소 중의 하나였다.

한편 우리가 3박 4일간 머무를 브리즈번 교구 ‘스테판 성당’은 최근에 현대식으로 지은 깨끗한 성당이었다. 전통적인 서양 교회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본인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실망감도 잠시, 이 성당이 얼마나 많은 신자들의 노력과 기도 속에서 지어진 것인지 본당 신부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처음의 실망감이 놀라움과 존경의 마음으로 바뀌었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지어진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적인 전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현대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성당을 많이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어떻든 밤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들을 기쁘게 맞아 준 스테판 성당 가족들은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이처럼 우리를 편하게 맞아 주었다. 특히 브리즈번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현지인들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서양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 본 적이 없는 본인은 대회 참가 직전까지 ‘홈스테이 기간 동안 어떻게 지내야 할까?’ 많이 고민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홈스테이 가족들은 가식적이거나 형식적이지 않고,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정말 가족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실 브리즈번에서 지낸 3박 4일은 브리즈번 교구가 준비한 공식 프로그램에서보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현지인들과 지낸 시간들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그들의 신앙, 문화, 사고방식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나아가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결정적인 것은 같은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가 함께 모여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로 어떤 관계도 맺지 않고 아무 상관도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신앙 안에서 함께 머물고 사랑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놀라운 일이고, 기적이었다. 지금도 시드니 본 대회 참가를 위해 브리즈번을 떠나는 날 새벽, 우리를 환송하러 나온 스테판 성당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그곳에서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조용하고 풍요로웠던 브리즈번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도착한 시드니는 한 마디로 ‘축제’ 였다. 전 세계에서 참가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고, 각종 행사장은 초만원을 이루었다. 도시락 하나 받기 위해 20-30분씩 기다리는 건 보통이었고, 시드니 시내에서는 대중교통보다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제야 제대로 된 대회를 하는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거리 곳곳에서 춤과 노래가 이어지고, 행렬하는 곳마다 자기 나라와 민족을 상징하는 노래나 구호가 계속되었다. 우리도 질세라 “대~한 민국!”을 외치며 2002년 월드컵의 분위기를 재현하였다.

그런데 지난 월드컵 효과인지 몰라도 외국인들마저 우리와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예전에는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니-하오’나 ‘곤니찌와’라고 인사했다는데, 호주에 있는 동안에는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그만큼 한국이 세계 속에서 그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서양 사람들의 어설픈 ‘안녕하세요?’가 어느 때보다 반가운 소리로 들렸다.

세계 청년대회의 백미는 무엇보다 교황님과 함께하는 기도와 미사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계 청년대회에 처음으로 함께하시는 베네딕토 교황님께서는 렌드윅 경마장에서 25만 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현대 사회의 도전과 유혹에 굴하지 않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젊은이가 되라.”는 메시지를 남기셨다. 교황님은 이번 세계 청년대회 주제인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는 성경 말씀이 이번 대회뿐만 아니라, 현대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전 세계 25만 명의 젊은이가 함께하는 기도와 미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관을 이루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면 언어와 피부, 인종과 문화가 달라도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진정한 형제자매가 될 수 있음을 가슴 깊이 체험하였다. 거기에서는 어떤 다툼이나 분열도 없었고, 서로를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랑만이 흘러 넘쳤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이들의 열정이 사그라진 것도 아니었다. 교황님과 함께하는 기도와 미사는 거룩한 예배이면서 동시에 젊음을 발산하는 거대한 축제였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말하고 하느님께 기적을 청한다. 하지만 기적은 청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다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함께’ 할 때 가능한 일이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고, 우리가 함께 할 때 일어나는 것이 바로 기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세계 청년대회는 어떤 이해관계나 목적 없이 오로지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함께 모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놀라운 기적이다. 특히 세속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의 상황을 감안할 때 신앙 하나로 25만 명의 젊은이가 한 자리에 모여 기도했다는 사실은 그 어떤 세상적인 일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기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에서 수많은 기적 이야기를 접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은 언제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분은 당신이 일으키신 기적을 보고 모여든 군중에게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아라, 영원히 살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요한 6,26-27 참조)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세속화로 교회가 약해지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개최된 이번 세계 청년대회는 그 자체로 기적이고 또 기적의 의미를 세상에 드러내는 또 하나의 복음, 즉 희망과 기쁨의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사실 현대 젊은이들에게는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잠재된 믿음을 증거하고 드러내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3년마다 열리는 세계 청년대회에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잠재된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그들 안에 잠들어 있는 신앙을 일깨우는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세계 청년대회도, 아시아 청년대회도, 더 나아가 지난해 있었던 한국 청년대회도 그렇게 잠재된 젊은이들의 믿음을 일깨우고 증거 하기 위해 준비된 행사였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모인 믿음의 현장에서 매번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났다. 이제 우리는 그 기적을 체험한 증거자로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주님, 성령의 힘이 우리를 통해 열매 맺도록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야겠다.

 


* 강진기 신부님은 2003년 6월 사제서품 이후 2003년 9월-2005년 8월 김천 평화성당 보좌, 2005년 9월-2006년 8월 대구 태전성당 보좌를 거쳐 2006년 9월부터 제1대리구 청년담당 사제로 사목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