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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의학코너
대장이 뿔났다


김대동|의사, 대구가톨릭대학병원 외과 교수

요즘 드라마에서 60세가 넘은 뿔난 어머니의 1년간의 휴가를 두고 네티즌을 비롯하여 사람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40년 동안 자식뒷바라지와 남편내조 그리고 시부모를 정성스럽게 모신 것에 대해 자신에게 내리는 상으로 자신을 위해 1년을 살겠다는 선언을 하고 집을 나간 한 어머니. 약간은 현실적이지 않은 드라마상의 설정을 두고 어떤 이는 부러워하고 어떤 이는 공감하고 또 어떤 이는 못마땅해 한다. 역시 세상에는 뿔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뿔난 어머니, 뿔난 아버지, 뿔난 자식들 그리고 세상에서 함께 살고 있는 많은 뿔난 이들…. 피노키오의 작고 앙증맞게 줄어든 코처럼 이 분들의 커진 뿔(?)이 작고 말랑말랑하게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오늘의 주인공 ‘대장’은 평생 동안 우리 몸에서 소화되고 난 찌꺼기의 노폐물 처리장 역할을 한다. 그 결과로 생겨난 가스들을 배출하고 몸 안에 있는 세균을 다 모아서 찌꺼기와 함께 변의 형태로 모아서 몸 밖으로 보내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우리 몸이 건강하도록 뼈 빠지게 일을 해주는데도 ‘대장과 항문’은 사실 그렇게 주목받지 못한다. 얼굴처럼 로션을 발라주지도 않고 손처럼 자주 씻지도 않고 다리처럼 자주 안마를 받지도 못한다. 그래도 묵묵히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해 온 이 대장이 요즘에는 좀 뿔이 난 것 같기도 하다. 

2005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대장암이 폐암을 제치고 신규 암 발생빈도수 2위를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10% 가까이 증가한 15,000명 이상의 환자가 1년 동안 새롭게 대장암으로 진단되는 것이다. 대기업 사장님이나 연예인들 사이에서 종종 암 진단의 소식이 들려오고 주위에 있는 지인들의 갑작스런 수술소식에 놀라기도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장암 사망률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다.

대장암의 20%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병하며 나머지 80%는 유전적 요인과 관계없이 발병한다. 이에 관계되는 원인으로 육식위주의 식습관과 음주, 비만, 운동부족 등이 제시되었는데 그 중 영향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동물성지방을 많이 먹는 경우 대변의 양이 적고 대장을 통과하는 시간이 채소나 곡물같이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먹는 경우보다 길다. 대장을 통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음식물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과 과다 분비된 담즙산, 대장 내의 세균들이 함께 작용하여 암을 유발하기 쉬운 물질을 만들어 내고 이것들이 세포와 오래 접촉하게 되어 결국 대장암발생률이 증가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대장암을 의심할 수 있는 특징적인 증상은 없다. 암으로 진단 받기 전 주요 증상은 항문출혈, 과민성 대장증후군 증상, 변비, 빈혈 등이 있으나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경우도 50% 가까이 된다.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만 너무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대장암은 비교적 대처하기가 ‘쉬운 암’중 하나다. 왜냐하면 암 세포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자라고 발병 연령이 40대 후반 이후로 비교적 뚜렷하며 암 전 단계를 정확하게 집어내는 진단법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는 일은 드물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피할 수 있는 암이 바로 대장암이다.

대장의 정상 세포는 90% 정도가 용종이라 부르는 선종의 단계를 거쳐 암으로 발전한다. 일반적으로 정상 세포가 선종으로 변하는 데 3~7년이 걸리고 선종이 암으로 변하는 데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결국 대장의 정상 점막 세포가 선종단계를 거쳐 암으로 변하는 데는 5~15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바꾸어 말하자면 90%의 경우에서는 대장암의 조기예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충분히 예방 가능하고 일찍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암의 조기 발견율이 30%에 이르는데 비해 대장암은 5%를 밑돈다. 위내시경에 비해 대장내시경을 잘 안한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유로 대장내시경이 고통스럽다는 편견과 검사를 위해 먹는 3~4리터의 하제를 들 수 있겠는데, 요즘엔 기술의 발달로 시술이 그리 고통스럽지 않으며 수면내시경도 가능하고 하제를 먹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대안으로 개발된 약들도 있다.

대장 용종은 대장 점막의 이상 증식으로 발생하는 병변으로 40대에서는 30%, 50대 이상에서는 40% 가까이 발견될 정도로 매우 흔한 질환이다. 대한 장연구학회가 11개 대학병원과 공동 연구한 자료를 보면 아무 증상이 없는 사람 가운데 무작위 대장내시경 검사를 할 경우 대장암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는 ‘선종’이 발견될 확률이 26.2%였다.

대장암은 내시경을 통해 아주 분명하게 진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40대가 넘으면 꼭 내시경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하고 싶다. 40세 이상이면서 평소와 다른 배변 습관, 즉 변비나 설사가 상당기간 지속되거나 배가 자주 아플 때, 대변의 굵기가 가늘어질 때, 대변에 피가 묻거나 섞여 나올 때, 대변을 본 후에도 덜 본 것 같은 잔변감이 있을 때는 내시경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만약 가족력이 있거나 평소에 육식을 즐기거나 과음하는 경우에는 조금 더 일찍 시작해도 좋다. 조기 발견이 치유 확률을 높일 열쇠인 것이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의 대장도 뿔나지 않게 꼬박꼬박 잘 챙겨주어야겠다. 동물성 지방과 알코올의 섭취를 줄이고,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으로 독소를 빨리 배출시켜 주고 물도 많이 먹고 양파와 마늘을 포함하여 야채 위주의 식단을 짜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내시경검사를 시행하여 관리해주자. 그러면 대장은 평생 우리 곁에서 뿔내지 않고 우리를 도우며 우리와 함께 행복할 것이다. 뿔난 대장을 위로하자!


* 약력
·전공분야 : 대장암, 직장암, 양성대장항문질환, 대장내시경, 복강경수술
·학회활동 : 대한외과학회 정회원, 대한대장항문학회 평생회원, 대한암학회 정회원, 대한 소화기학회 정회원,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준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