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생활에도 건전한 신앙생활이 있고, 건전하지 못한 신앙생활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자기 딴에는 누구보다도 성당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여기는 신자들 가운데에도 미신적인 믿음에 꽉 물들어 있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교회의 교도권이 명시적으로 금하는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은 아주 열심하다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이들도 있다. 이런 이들은 자기 딴에는 열심한지 모르겠지만 건전한 가톨릭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두 가지 요소가 요구된다. 하나는 ‘신앙의 행위(fides qua creditur)’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의 내용(fides quae creditur)’이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가 엄마를 믿는다.”고 말할 때는 신앙의 주체를 가리키는 것이고, “어린 아이가 엄마의 말을 믿고, 엄마의 약속을 믿는다.”라고 말할 때는 신앙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엄마를 믿는다.”라고 할 때는 앞의 두 요소가 다 내포되어 있다.
신앙인이라 함은 신(神)을 믿는 사람을 가리킨다. 아무리 종교에 박학다식하다 해도 자신이 인격적으로 신에게 의탁하는 행위가 없다면 그 사람은 신앙인이 아니다. 거꾸로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신의 존재를 믿고 신에게 자신을 오롯이 의탁하려 한다면 그는 훌륭한 신앙인이라 하겠다. 그래서 신앙의 행위라 함은 신앙행위를 하는 주체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하지만 신앙인은 자기 신앙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신앙진리를 믿어야 하고, 불교 신자는 불교가 가르치는 불교 교리를 믿어야 한다. 이것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내용이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주님께서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교도권을 주셨고, 교도권은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믿고 따라야 하는 신앙의 내용을 신자들에게 가르친다. 만일 누군가가 자기 주관대로 생각하여 교도권이 가르치는 신앙과 도덕에 관한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오류에 빠지거나 심지어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현대에 들어 많은 사람들은 주관주의에 치우친 신앙생활을 하려 한다. 올바른 신앙의 척도조차도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을 그 기준점과 잣대로 삼으려 한다. 믿음의 내용은 계시에 근거하는 것이지 결코 자신의 주관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가톨릭신자들에게 있어 건전한 신앙생활이란 계시를 보관하고 보호하고 해석하는 교도권의 가르침을 순명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믿고 오롯이 따르는 것이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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