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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나가사키에서의 둘째 날


신성원(요한)|새 신부, 만촌1동성당

들뜬 마음을 안고 조환길 주교님과 동기 신부님들 함께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일 년 전 즈음에 《나가사키의 노래》라는 책을 읽었기에 더욱 설레는 순례 길이었다.
첫째 날 후쿠오카, 운젠, 시마바라에서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한 다음 둘째 날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자동차들이 달리는 방향, 경치, 시내 한가운데를 달리는 전철 등 많은 것들이 우리와 다른 그 곳에 있는 한 성당에서 주교님과 함께 미사를 드린 다음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나는 책 한 권을 펼쳐 들었다.

《팡세》….
약 18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나가이 다카시 박사와 나는 같은 책을 읽고 있었다. 180년 전에 한 사람을 하느님께로 이끈 책을 같은 장소에서 읽으면서, 그곳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던 한 사람의 생각을 엿보고 싶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이 책을 시작으로 ‘여기애인(如己愛人, 남을 자기 같이 사랑하라)’ 이 네 글자를 평생 동안 삶의 기준으로 삼았을지도 모를 터였다.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와 비슷하게 우리는 원폭 자료관에 도착했다.
원폭 자료관 안에는 원자폭탄의 폭발과 함께 녹아버린 유리병과 두개골이 붙어버린 철모, 그리고 부서진 성당 건물을 볼 수 있었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져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역사, 핵폭탄이 터진 곳 주위에는 섭씨 3000-4000도의 고열이 발생한다는 과학적인 지식 등 이런 객관적인 사실 이면에는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살던 곳의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원자폭탄의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는 슬픔도 함께 묻어 있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들인 것처럼 나가사키에 도착하기 전에 봐왔던 많은 순교자들 역시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들이었고, 원자폭탄의 어두운 빛과 조용한 굉음 앞에서 사라진 사람들 역시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들이었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그들 역시 원자폭탄으로 인한 고통스런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양동이에 타다 남은 형제들의 유골을 모아야 했다.

우라카미 성당에 모셔진 성모상이 그때의 참상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우라카미 성당의 오른쪽 작은 제단에 모셔진 그 성모상은 원폭 때문에 몸은 모두 부서지고 목과 머리만 남아 있었다. 보통 십자가나 성상이 놓이는 자리에 성모상의 머리 부분만이 모셔져 있었다. 그 성모상을 바라보면서 제일 먼저 시선이 간 곳은 검게 타들어간 두 눈이었다. ‘성모님은 무엇을 바라보고 계셨기에 그 두 눈이 타들어 가셨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가이드를 해주신 신부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자기 자식이 죽는데 두 눈을 뜨고 멀쩡히 지켜볼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 성모상은 원자폭탄으로 인해서 당신의 자식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이 멀어버리신 성모님,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눈이 멀어버리신 성모님의 모습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외면하고 교만과 욕심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고 그곳에 핵폭탄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결국 성모님의 눈을 멀게 한 것은 우리의 외면과 교만 그리고 욕심 때문이었다. 그 성모상 앞에서 나를 사랑해 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쉽사리 욕심과 교만을 선택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유다인들은 크고 눈부신 기적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 그러므로 좀 더 찬란한 기적, 즉 모세가 행했던 기적도 그 기적에 비하면 매우 작은 것에 불과할 만큼 큰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746항)” 원폭자료관과 우라카미 성당에 들리기 전 버스에서 봤던 《팡세》 구절 중 한 부분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마음으로 느끼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보다 교만과 욕심을 선택할 때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팡세》에 나오는 유다인의 모습처럼 지금의 우리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보다 큰 것만을 바라는 우리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셋째 날과 넷째 날 히라도에서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접하게 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박해를 피해서 숨어 살 수밖에 없었던 그리스도인들 모두 힘든 삶을 사셨다. 하지만 주위의 작은 것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행복을 발견했기에 그런 발자취를 남겨 놓을 수 있었으리라.

한국에 돌아와 만촌1동 성당에 보좌신부로 발령을 받고 주임신부님께 인사드리기 전에 성당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성모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성모상을 보면서 나가사키에서 봤던 성모상이 다시 떠올랐다. 조용한 성당 안에서 성지순례의 감동을 잠깐 되새기며, 작은 것에서부터,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에서부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위해서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 신성원 신부는 2008년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대학원 졸업, 2008년 6월 24일 대구대교구장 최영수 대주교로부터 사제수품, 새 사제학교를 거쳐 현재 만촌1동성당 보좌로 사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