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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위령 성월에 만난 사람들


취재|김명숙(사비나) 편집실장

첫 번째 만남,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
죽음, 살아있는 이라면 언제이든 한번은 만나야 할 길벗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피해갈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내 생애 마지막 관문인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로 나아간다.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든 그 여정 안에 오늘도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사랑의 손길은 바삐 움직인다.

‘호스피스(Hospise)’는 귀한 ‘손님’을 뜻하는 라틴어 ‘Hospes’에서 나온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임종간호, 말기암환자 간호, 선종간호, 영적간호로 불리고 있다. 이러한 호스피스 활동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남아있는 삶을 잘 정리하여 삶과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가치를 깨닫도록 도와주며, 환자와 가족들을 끝까지 지지함으로써 환자가 마침내는 편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말한다.  

11월 위령 성월을 맞아 찾아간 대구가톨릭의료원(의료원장 : 김준우 마리오 신부)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사무실. 병원 성당 옆에 자리한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회(회장 : 우병철 바오로, 부회장 : 박옥녀 노엘라) 사무실에는 전·현직 간부들이 모여 봉사자들의 연례피정 준비로 부산하다. 현재 50여 명의 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시간에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유난히 말기암 환자들의 선종소식이 잇따르고 있어 봉사자들은 지난 9월에는 한 달 내내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우병철(바오로) 회장은 “죽음을 거부하는 이들,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들, 결국엔 죽음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말기암 환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조금이나마 그들의 고통을 끌어안으려 안간힘 쓰며 함께 하려는 것이 저희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해준다. 임종자들이 하느님께로 가는 마지막 준비를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그들. 무엇 때문에 굳이 이 힘든 호스피스 봉사활동에 동행한 것일까?

매일 아침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병원 성당에 모여 기도를 바치고 서로가 맡은 환자들을 찾아가 보살핀다. 문숙자(오틸리아) 총무는 호스피스 봉사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내하는 마음을 손꼽는다. “가장 힘든 것은 환자들이 저희들을 거부할 때입니다. 그럴수록 매일 찾아가서 마음의 문을 열도록 기도드리지요.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환자들이 마음을 열어 주더군요.”

대상자를 환자라고 여기기 보다는 가족으로 생각하고 대한다는 임태식(바오로) 전임 회장. “호스피스 봉사는 임종하는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장지까지 따라가는 일, 사별가족을 돌보는 일 등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활동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임종을 앞둔 환자가 가족과 미처 풀지 못한 갈등의 고리를 저희들을 통해 풀거나 냉담을 풀 때, 봉사자로서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대구가톨릭의료원의 호스피스 활동은 1994년 11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말기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어려움에 함께 하고자 병동 간호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호스피스 설립 때부터 활동해온 성미순(비아) 팀장은 가정간호팀장의 직책까지 겸하면서 이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일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고 언제나 봉사자들에게 감사드리고 있지요. 항상 기쁘게 살아가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저 역시 힘을 얻어 더 열심히 활동하게 되거든요. 봉사자들 덕분에 우리 병원 호스피스 활동이 살아 있다고나 할까요?”

오늘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은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사람들 속에서 울고 웃으며 하루를 보낸다. “선종 소식이 들릴라치면 자다가도 뛰어나오게 된다.”는 박옥녀(노엘라) 부회장의 말처럼 하느님의 도구로 쓰임이 그저 고맙고 감사하기만 그들이다.



대구대교구에서 운영하는 천주교 군위묘원과 범물묘원. 이 두 곳은 모든 신자들에게 마지막 육신을 하느님의 집에서 평화롭게 쉴 수 있도록 마련된 묘역이다. 그리고 교구청 안에 있는 성직자 묘지는 초대 교구장부터 선종한 교구 사제들의 묘역으로 신자들의 방문이 잦고 기도의 발걸음 또한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살아서 부유하였거나 가난하였거나 마지막 생을 마감한 후, 하느님 나라에서는 잘남도 못남도 없이 영원한 천상행복을 누릴 수 있는 우리. 그 복된 삶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며 복음을 실천하려고 애쓰고 노력한다. 그들 가운데 묘역을 지키는 이들을 만나러 묘지를 찾았다.

두 번째 만남, 천주교 군위묘원 최상배 소장
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의 군위묘원. 최상배(안토니오) 소장은 10년을 하루 같이 대구에서 군위까지 출근하며 묘역을 보살핀다. 묘역으로 이르는 길은 아스콘 포장으로 자동차가 다니는 데 편리함을 더하였고, 묘역들은 단지별로 구분하여 유족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말끔히 단장하였다.

현재 묘지에 7,500기, 납골당에 900기가 모셔져 있는 군위묘원은 묘지와 납골당을 함께 갖춤으로써 앞선 장묘문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최상배 소장은 “처음 이곳에 불림을 받았을 때는 솔직히 좀 망설였습니다. 매일신문사에서의 30년 직장생활을 끝으로 묘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무척 낯설었지요. 하지만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의 이끄심이었고 섭리였다고 생각하고 기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매년 추석 당일과 11월 2일 위령의 날이면 묘지에서 추모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군위묘원에는 작은 경당과 더불어 야외에는14처 십자가의 길도 잘 만들어 놓았다. 묘역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내려온 최상배 소장은 “위령 성월 동안 많은 교우들이 묘지를 방문하여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특별히 감천리 묘지에서 이장해 온 무연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1986년 설립된 군위묘원 이용은 가톨릭 신자로서, 구비서류는 사망진단서와 주민등록등본, 신자확인서가 필요하며, 관리비 미납여부 등 자세한 내용은 대구대교구청 관리과(053-250-3003)로 문의하면 된다. 
         
세 번째 만남, 천주교 범물묘원 손오식 소장
올해로 17년째 범물묘원을 돌보고 있는 손오식(골라도) 소장. “5,400여 기의 묘가 들어서 있는 이곳 범물묘원은 대부분 땅주인들이 있습니다. 1965년에 묘지가 들어서면서 그 당시에 싼 값으로 터를 마련해두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대구. 수성구 범물동의 산등성이를 따라 산재해 있는 묘역들. 묘지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다니는 발걸음들을 따라 자연스레 산길이 만들어져서 오솔길을 이루고 있다. 산길을 따라 산중턱에 오르니 돌제대가 있고, 한쪽으로는 성모상이 모셔져 있으며, 미사는 위령의 날에 봉헌되고 있다. 1년 365일 출근하여 묘역을 살피고 돌보는 손오식 소장은 산소에 가져 오는 비닐들 때문에 근심이 많다며 “많은 분들이 성묘 올 때마다 꽃을 싸오는 비닐들을 그냥 두고들 가시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그런 비닐들이나 조화들은 산소를 훼손하는 요인이 되므로 각별히 신경을 좀 써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한다. 

현재 범물묘원은 예약되어 있는 이들만 묘지를 사용할 수 있으며, 별도의 관리비 없이 유족들이 개별적으로 묘지를 관리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대구대교구청 관리과(053-250-3003)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