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물 판매소에서 마음에 드는 묵주 하나를 꼼꼼히 살펴보다 ‘이 성물은 야곱의 집’서 정성을 다해 직접 제작한 것으로 판매 수익금은 장애인 식구들의 자활에 밑거름이 됩니다.?라는 겉포장지의 글귀가 마음을 끈다. ‘어떻게 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성물을 만들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들이 궁금해진다.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에 자리한 ‘야곱의 집’. ‘야곱공예’라는 현판이 걸린 것 외에는 빌라 형태의 일반 가정집 같지만 이곳은 26명의 장애인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이다.
허리 높이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서니 엘레베이터가 있다. 3층짜리 저층 건물이지만 장애우들의 이동을 위한 배려이리라. 그러고보니 턱도 거의 없는 데다 곳곳에 경사로도 있고, 화장실도 장애우들을 위한 화장실이다.
이곳 저곳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분주하던 야곱의 집 대표 장종욱(야고보) 씨가 환한 웃음으로 맞아준다. 1992년에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그이다. “사고 후 일년 반 가량 누워만 있었습니다. 파티마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수녀님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한방치료를 받으며 침도 맞았는데 침 놓아주던 사람도 신자였습니다. 그분이 어느 날 저에게 성서를 읽어 보라고 주더군요.” 이런 것들이 인연이 되어 그는 통신교리를 통해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복지관에서 직업 재활 교육을 받으며 취업을 시도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장애우들을 향한 세상의 냉대와 편견을 경험한 그는 취업이 어려운 장애우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결심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지하방을 하나 얻어, 당시 반야월성당 주임신부이던 박강수(로무알도)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사회복지위원들의 도움을 받아 장애우 몇 명과 함께 부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서로 마음을 모아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만 생겼을 뿐 ‘자장면 먹으면 본전, 콜라까지 마시면 손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돈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활을 꿈꾸며 시작한 일인데 일다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위의 조언을 얻어 새로 시작한 일이 바로 묵주를 만드는 일이었다.
장종욱 대표의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작업장으로 향했다. 일에 몰두해 있던 직원들은 손으로는 계속 묵주를 만들면서 반갑게 눈인사를 건넨다. 작업장 테이블에는 묵주알과 묵주를 엮는 줄 그리고 작은 십자가들이 가득 놓여져있다. 묵주 한알을 꿰고 매듭을 짓는 그들의 손놀림은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작업을 하다보면 손에 상처를 입을 때도 있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는 이유는 찾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야곱의 집 가족들은 웃는다. 그 웃음에는 ‘성물’을 만든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담겨있는 듯하다.
지난해는 야곱의 집 가족들에게 특별한 해였다. 설립 8주년을 맞이한 데다, 집을 직접 설계해 이사오면서 햇볕 잘 드는 곳에서 일해 보자라던 장종욱 대표와 동료들의 꿈이 이루어진 것. 이사오기 전 야곱의 집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지하방이었다. 휠체어 서너 대가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작업장이 일터면서 식당이었고 또 휴게실일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하지만 현재의 야곱의 집은 지상 3층 건물로 작업장이 넓은 데다 햇볕도 잘 들뿐더러 식당과 기숙사로 쓰이는 방도 갖추고 있다.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는 탁구도 치고 노래방기계로 신나게 한곡 뽑으며 즐길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여성은 “이곳에서 일한다는 것이 참 즐거워요. 또 신자로서 묵주를 만드는 일에 자부심도 느끼구요. 묵주 만드는 이 일 자체가 기도라 생각합니다.”라며 쑥스럽게 말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장애우들은 정신지체, 청각장애, 뇌성마비 등 그 장애도 다양하다. 번번히 취업의 문턱에서 낙심하였었고 집 밖으로 나오는 것 조차 힘든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야곱의 집에서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서로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때로는 입과 귀가 되어주며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웃을 일도 많아졌고 자활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지게 되었다.
일차 목표였던 ‘햇빛 들어오는 곳’에서 일하자던 장종욱 대표와 야곱의집 가족들은 막상 꿈을 이루고 보니 관리와 유지에 드는 지출이 크게 늘어서 걱정이라 한다. 게다가 값싼 수입 묵주들이 몰려오면서 하나하나 수작업을 하고 최상의 재료를 써오며 이윤을 따지지 않았던 그들의 작은 기준에도 조금씩 흔들림이 생긴다고.
그러나 장종욱 대표는 “힘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필요할 때마다 넘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일터이면서 동시에 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인 ‘야곱의 집’.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배려하는 고운 모습에서, 신체적인 불편함을 극복하기보다 그것을 인정하고 하느님이 주신 각자의 달란트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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