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5일 고희연과 함께 43년의 사제직을 은퇴한 장태식(리노) 신부님을 찾아 뵈었다. 요일도, 시간도, 날짜 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바빴던 지난 43년을 뒤로하고 은퇴한 장태식 신부님. 이제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지내도 될 법한 데 습관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 지난 세월을 새벽미사와 자기 성찰의 기도로 보냈던 그 무수한 날들처럼 장신부님은 여전히 자기 자신한테 사목을 하고 계셨다.
사제는 평생 하느님 곁으로 갈 때까지 사제로 살아야 한다는 장 신부님은 은퇴 전에는 신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하느님 말씀대로 살았다면 은퇴한 지금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사목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씀하신다. 그 동안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하지 못했던 수행을 지금부터 시작한다는 장 신부님은 본당 사목을 하는 동안 “24시간을 긴장 속에서 살았다.”며 지난 43년의 세월을 표현하신다. 그 만큼 신자들과의 교류를 중요시 여기며 신자들을 위한 삶을 살려고 많은 애를 썼다.
“본당 사목을 하면서 훌륭한 신자들, 수도자들 만나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본당을 꾸려나갈 수 있었어요. 하느님의 은혜지요. 지난 일을 뒤돌아 보면 좀 더 열성적으로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10개가 넘는 본당 사목을 하는 동안 보람되고 즐겁고 안타까운 일도 많았을 터. 그 중에서도 신부님은 1975년 대봉성당에서의 일을 잊지 못하고 계셨다. 교구 사목국장을 하던 중, 주교님의 명으로 짐도 꾸릴 시간 없이 이불 한 채만 달랑 들고 대봉성당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 성탄을 앞둔 23일이었다. “성탄을 지내고 나니 중?고등학생 간부들이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들어와서는 버려진 아이를 교리실에서 지내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라.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성탄 전야에 성당 정문 앞에서 조그만 아이 둘이 버려진 것처럼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이 불쌍해서, 중?고등학생들이 데리고 들어와 밥도 주고 한 겁니다.” 신부님은 아이들 집으로 찾아가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치료와 일자리를 구해주고 움막집에서 살던 그들을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구교우 집안인 신부님은 1950년 경향잡지에 실린 신학생 모집공고를 보신 아버지의 권유로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13세 어린 소년은 처음엔 그저 기차를 타 보고 넓은 곳에 가서 식견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에 “네” 한 것이 어느 순간 진정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단다.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신앙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사제로서 걸어온 삶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은퇴 후 영천에 있는 공소에 다니신다는 신부님은 앞으로 공소 사목활동을 계획하고 계신다. 비록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공소를 찾아서 신자들과 어울리며 또한 자신을 필요로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 있다면 흔쾌히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부님은 신자들에게 성서공부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
“주일도 잘 지켜지지 않는 요즘, 성서는 뒷전으로 밀려나 읽는 신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성서 안에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리가 들어 있어요.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본인이나 남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현대사회가 변하는 만큼 사제들도 신자들도 발빠르게 그 변화에 맞춰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는 장신부님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사제들은 교회가 사회 안에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밝혔다.
“무거운 짐을 지고 고갯길을 올라갔다가 짐 내려놓고 홀몸으로 고갯길을 내려온 듯한 기분”이라며 막상 은퇴한 지금의 심정을 아쉬움과 함께 조심스럽게 비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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