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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부의 먼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언어


마진우(요셉) 신부|볼리비아 선교

예전 제 은사이신 장인산 신부님께서는 ‘말이란 하나의 열쇠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열쇠를 들고 있으면 아무리 굳게 잠긴 문이라도 열 수 있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언어는 하나의 열쇠와도 같은 것이라 하셨습니다. 볼리비아에 오면서 제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바로 이 언어라는 열쇠의 필요성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브라질 상파울로 공항으로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부터 이 언어의 장벽을 실감해야 했습니다. 승무원을 불러 뭘 좀 도와달라고 하자 멀쩡하게 한국 사람처럼 생긴 승무원이 나에게 처음 하는 말이 “저 한국말 못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부족한 영어로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 이제 나의 무대는 한국이 아니고 세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브라질 상파울로 공항에 도착해서는 더욱 당황스러웠습니다.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이리 저리 도움을 요청하러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 귀에 들리는 거라고는 억센 발음의 생소한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사실 뭐가 뭔지 구분하지도 못했습니다.)뿐이었습니다. 세계어라고 굳게 믿어왔던 영어가 생각만큼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는 것, 세상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코차밤바에 와서 스페인 어학원에 다닌 지 어느덧 5개월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짧은 인사말만 하다가 슬슬 어휘수가 늘고 여러 표현들을 삶 안에서 직접 익히면서 이제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슬슬 표현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언어로 인해 학원 선생님과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또 반대로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과 스페인어라는 한 수단으로 같이 마음과 우정을 나누기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실력을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느끼는 것은 이 언어라는 것은 많은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짧은 인사말 한번이지만 그를 통해서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나 역시도 나의 마음을 지극히 짧은 말로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실제로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말마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표정, 몸짓, 억양 등이 더 많은 것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때 한국에서 영어 열풍이 분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상황은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헌데 성당에 계신 미국 아주머니 앞에다 주일학교 학생을 두고 인사 한마디 건네 보라 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광경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그 아이들 앞에 영어 시험지를 가져다 놓으면 문맹인 영어권 사람보다도 훨씬 더 잘 풀어내리라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영어교육일까요? 언어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언어’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성경 말씀처럼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언어이셨습니다. 우리가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는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님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표현되었고 우리는 그걸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을 배우고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가장 근본에 우리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굳이 많은 언어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내가 지닌 언어를 통해서 나는 과연 무엇을 담아내고 있나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다른 이에게 건네는 작은 인사말 한마디, 작은 눈짓과 표정 안에 작은 사랑들을 담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세계 공용어, 모든 이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인 사랑의 언어를 지닌 사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