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어느 주일, 김천평화성당(주임 : 황용식 타대오 신부) 광천공소(김천시 봉산면 광천동 615번지)를 향해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각이라 비교적 한산한 고속도로를 2시간쯤 달려 추풍령 톨게이트를 빠져나왔지만 쉽사리 공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던 중 저 멀리 기자를 마중 나온 신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오전 9시, 공소예절이 시작되었다. 광천공소 신자 수는 10여 명 남짓, 그마저도 몇몇이 빠져 오늘은 6명의 신자들이 최낙련 전교회장의 진행에 따라 예절을 봉헌한다.
예절이 끝나고 신자들과 둘러앉은 가운데 안희구(울바노) 공소회장에게 공소의 역사에 대해 물어보았다. “광천공소가 있는 이곳은 충청북도 영동군과 경상북도 김천시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곤천’이라 불리던 마을로 박해시대 때부터 황간 상촌 지방의 신자들과 왕래가 잦았던 교우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강도떼에 못 이겨 신자들이 흩어져 버리고 당시 공소 회장인 정석암 할아버지가 집을 지어 가족들끼리 기도 드리는 것이 알려져 부산교구 초대교구장이신 고(故) 최재선 주교님이 오시어 판공성사를 주시면서 광천공소가 시작되었다.” 정석암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 바오로 씨에 이어 20여 년째 공소를 이끌어가고 있는 안희구 회장. 어린 시절부터 이곳에서 자란 그는 “처음부터 공소를 생각해서 집을 지을 정도로 깊은 신앙을 가진 정석암 할아버지가 안 계셨더라면 이곳에는 더 이상 신앙이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라며 공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나타내었다.
김천평화성당에는 세 개의 공소가 있었다. 하지만 교통편의 개선으로 두 곳은 본당으로 편입되었고, 이제 남은 곳은 광천공소뿐이다. 광천과 김천 시내를 오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밖에 없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공소 신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최낙련(엘리사벳) 전교회장이다. 본당 사제를 대신하여 파견된 엘리사벳 회장의 공소 방문은 1987년 11월 1일부터 벌써 20여 년째 계속되고 있다. 공소예절 진행과 함께 본당 소식을 전하며 신자 가정의 자녀들에게 교리공부를 가르쳐 첫 영성체까지 다 시킬 정도로 공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엘리사벳 회장은 “본당 사제로부터 임명 받아 여기서 하느님 말씀을 전할 뿐, 주도권은 여기에 있다.”며 본인 중심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며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겸손한 모습이다. 이런 한결같은 봉사에 김천평화성당에서는 지난 해 10월 26일 본당설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엘리사벳 회장에게 감사패를 수여하였다.
 
엘리사벳 회장의 사랑과 정성에 신자들 또한 절대 신앙을 소홀하지 않는다. 안희구 공소회장은 “매 주일 9시면 어김없이 모여 공소예절을 봉헌하고, 레지오 기도문 전체를 바치며 주님께 신앙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이에 엘리사벳 회장이 “공소 신자들은 정말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절대 빠지는 법이 없다. 옆에서 지켜보면 정말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일러준다. 레지오 기도 외에도 “매월 한 차례씩 각 가정마다 돌아가며 반모임을 하고 있다.”는 안희구 회장의 이야기에 임필남(크리스티나) 씨가 덧붙여 말한다. “사순시기에는 다 같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대림시기에는 돌아가면서 대림기도를 바치는 등 신자로서 해야 할 도리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공소는 김천평화성당 3대 주임인 곽미걸(미카엘) 신부가 1974년 가정집을 구입하여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몇 차례 유지 보수를 했지만 사람의 온기가 없으면 집은 쉽게 노후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이규은(안드레아)·김복순(효주 아녜스) 부부가 이곳에 살면서 공소를 관리하고 있다. “하느님 집에 있으니 하느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생각에 아주 든든하다.”는 김복순 씨는 “이곳에 사는 것 만으로도 큰 은총.”이라며 앞으로 더욱 기쁘게 살겠다고 한다.
 
공소가 있는 광천동은 토지가 별로 없어서 신자들 대부분은 주요 농사인 포도 재배의 품앗이로 생활해 가고 있다. “서로의 일을 도와주며 신앙으로 함께 하니 한 가족이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는 임필남(크리스티나) 씨의 말처럼 오손도손 지내는 광천공소 신자들. 하지만 화목한 그들에게 공소의 불투명한 미래는 하나의 걱정거리이다. “지금 우리 세대가 끝나면 공소는 없어질 것 같아 걱정.”이라는 안희구 공소회장의 말에 엘리사벳 회장은 “앞으로 젊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사오지 않으면 더 이상 공소는 발전하기 힘들 것 같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광천공소를 위해 계속 봉사하겠다는 최낙련(엘리사벳) 전교회장과 앞으로도 변함없는 신앙을 이어가겠다는 안희구(울바노) 공소회장과 신자들. 그들은 오늘도 광천공소를 이끌어 갈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신앙을 끈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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