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잡지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달에는 이곳 사정상 찾아뵙지를 못했네요. 그동안 모두들 잘 지내셨나요? 여러분들께서 이 글을 읽으실 때쯤이면 한국은 많이 덥겠지요. 여기는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데, 본격적인 추위라고 해봐야 한국의 늦가을 날씨 정도에 불과하지만 늘 더운 지역이기 때문에 체감온도는 엄청나게 낮답니다. 저도 첫 해에는 그냥 반팔에 점퍼만 걸치고 다녔는데 이제는 이곳의 추위에 익숙해져서 한국에서 가져간 오리털 파카를 입고 다닌답니다.
지난 5월 22일은 본당 설립 12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곳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처럼 기념일(aniversario)을 굉장히 중요시 하거든요. 그래서 모든 기념일마다 신부들을 청해서 축복을 해달라고 합니다. 작은 가족의 기념일도 그럴진대, 본당의 기념일은 더 거창하겠지요. 벌써 지난 3월부터 사목위원들을 중심으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해서 4월 중순에 신자들에게 날짜를 발표했습니다. 각 단체별로 행사를 준비하고, 청년들과 어린이들은 장기자랑으로 춤과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했으며, 각 반별로는 축제일에 판매할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의 재미있는 특징 중에 하나는 각 반별로 준비되는 음식인데요, 한국은 본당에 잔치가 있으면 돈을 모아서 몇몇 사람들이 시장을 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음식재료를 받습니다. 반 모임에 가서 반장들이 ‘이번에 우리 반에서는 무슨 음식을 몇 인 분 준비할 계획이다.’ 라고 발표를 하면서 어떤 음식재료가 얼마만큼 들어가는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모인 사람들이 나는 닭을 한 마리 내겠다, 나는 쌀을 1킬로그램 내겠다, 이런 식으로 음식 재료를 모은 다음 한 가정에서 요리를 합니다. 그리고 그 요리를 행사 당일 본당으로 가지고 와서 판매를 하지요. 물론 판매한 모든 수익금은 본당으로 들어가서 본당의 1년 살림살이에 큰 도움을 줍니다.
축제 날짜가 잡히고 난 이후에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대로 다들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행운권 상품도 모으고, 각종 경연대회의 상품도 모으고. 여기서는 리파(rifa)라고 하는 행운권 추첨을 사람들이 즐겨합니다. 각종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반드시 나타나는데요, 한국처럼 그냥 공짜로 주는 행운권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는 행운권입니다. 한 장 당 1볼리비아노(boliviano; 볼리비아의 화폐단위로 한화 약 120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정도에 판매를 했지요. 약 1,000장을 찍었고, 800장 정도 팔렸으니까 약 100달러 정도 벌어들인 셈입니다. 물론 행운권 상품은 각 반별로 두 점씩 강제로 할당했고요, 큰 상품들은 빠드리노(padrino; 대부, 여기서는 세례와 견진성사 때의 대부의 개념 이외에 후원자라는 뜻으로도 사용이 됩니다. 여기서는 당연히 후원자라는 뜻이지요.)라는 이름으로 이곳저곳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희 신부들도 새끼돼지를 한 마리 상품으로 기증했어요. 이렇게 모인 상품이 약 30점 정도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상품으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는 21일 토요일 저녁에 전야제로 시작했지만 17일 저녁부터 자동차에 스피커를 싣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홍보를 했습니다. 물론 전단지도 만들어서 돌렸고요. 그런데 갑자기 수르(sur; 남쪽이라는 뜻입니다.)라고 부르는 남극의 차가운 바람이 몰려올 기미가 보여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수르가 오기 전에 먼저 비가 내리거든요. 비가 하루 정도 오고 난 후에는 반드시 이 수르가 닥쳐오고 한 삼사일정도 엄청나게 추워집니다. 그런데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에 걸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비상이 걸렸지요. 날씨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특히 상 프란치스코 공소의 예수성심시녀회 이 이시도라 수녀님이 기도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예순을 훨씬 넘기신 연세이신데도 이곳 선교지에서 얼마나 헌신적으로 사시는지 모릅니다. 그 분의 기도 덕분에 저희들이 잘 지내고 있지요.), 매일매일 일기예보를 점검했어요. 수녀님의 기도 덕분이었을까요, 비가 그친 뒤로 날씨는 계속 흐려 있었지만 걱정했던 수르는 오지 않았습니다.
21일 토요일 저녁 전야제의 첫 프로그램은 영화 상영이었습니다. 작년에 한국에 휴가차 갔을 때 동기신부들이 모아준 돈(동기 신부들이 사목하는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거의 강제로 빼앗은 돈이지만요.)으로 산 영사기를 이용해 성당 마당에서 영화를 상영했어요. 대형 스피커와 앰프를 동원해서 최대한의 음향효과를 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어요. 그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성당 마당을 꽉 채웠으니까요.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그동안 연습한 장기를 자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몇 팀의 첫영성체 어린이들과 견진성사 청년들, 각 반의 어린이들이 각자가 준비한 춤과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보여줬습니다.
여기서는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전통춤을 가르칩니다. 볼리비아의 각 지역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복장과 춤이 있거든요. 챠꼬(Chaco) 지방의 춤, 라빠스(La paz) 지방의 춤, 산타크루즈(Santa Cruz) 지방의 춤, 뽀또시(Potosi) 지방의 춤 등 모든 전통춤을 말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춤추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부끄러움은 전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출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요.
11시경 전야제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참 이번 행사를 위해서 꼬챠밤바(Cochabamba)에서 언어 공부를 하고 있는 김종률 스테파노 신부까지 내려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세 명의 신부들(박상용 요한 신부, 김종률 스테파노 신부 그리고 저요.)이 모여서 간단하게 평가회를 가진 후 다음날을 위해서 쉬었지요.
다음날인 22일 주일은 오전 9시 30분에 미사를 시작으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작년까지는 이곳 주교님들 가운데 한 분이 축제 미사를 주례하셨는데, 올해는 모두들 바쁘셔서 제가 미사를 주례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 안과 밖을 가득히 메우고 미사를 시작했지요. 평소에 미사에 나오지 않던 사람들도 이날은 미사에 참례했답니다. 게다가 평소에 두 대 봉헌하던 미사를 이날은 단 한 대만을 봉헌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왔는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곳에 거주하고 계시는 한국인 신자분들도 와주셨습니다. 이 분들은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인 신자 모임을 가지고 계시고, 저희들이 그 모임에 참석해서 교리도 가르치고, 미사도 함께 봉헌한답니다. 현재 신자 가정 세 가정과 짝교우 가정 두 가정, 예비신자 두 가정이 모임을 가집니다.
미사를 마치고 먹거리를 먹으면서 장기자랑을 구경했어요.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주기도 했습니다. 인근에서 일하는 스페인 평신도 선교회 상 바울로 선교회(이들은 저희 성당 바로 옆에서 유아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옆 본당인 세례자 성 요한성당(San Juan bautista)의 주임신부와 저희 본당에서 신현욱 루가 신부의 보좌신부 생활을 했던 에제키엘 신부, 지구장 신부인 시몬 신부 등이 와서 함께 음식을 먹고 즐기고 돌아갔습니다.
행사 중간에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성서퀴즈 대회도 열렸습니다. 원래는 12명이 참가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단지 4명만이 출전을 했어요. 4명만이 출전을 했지만 정말 불꽃 튀는 경쟁이었습니다. 상품도 1등은 새끼돼지 한 마리, 2등은 칠면조 한 쌍, 3등은 오리 한 쌍이었어요. 참가자가 4명밖에 되지를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4등에게도 상품으로 닭을 한 마리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축제에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 필로메나 교육관에 대해서 소개해 드렸었지요? 기억하시나요? 여기서 박상용 신부가 태권도를 가르치기로 했다는 것도 기억하시고요? 박상용 신부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태권도를 사람들 앞에서 시범을 보였답니다. 비록 수련 기간은 아주 짧았지만 어설프게나마 태극 1장까지 연습해서 시범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요. 시범이 끝나고 사람들의 문의가 끊이지를 않았답니다.
이렇게 사람들과 축제를 즐기는 사이 하루 해는 저물어갔고, 6시경에 모든 행사가 끝이 났습니다. 축제의 마지막은 약 한 시간 정도 진행된 자유댄스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이나 볼리비아나 이런 큰 행사가 있을 때 가장 몸으로 많이 뛰는 사람들은 청년들이지요. 한국에는 행사가 끝난 후 청년들을 위한 저녁 식사가 제공되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한시간 정도 자유롭게 춤을 추도록 해주는 게 전부입니다. 한국에 비하면 정말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주는 게 없다시피한 데도 이들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열심히 일합니다. 저녁에 청년 회장에게 물었습니다. “애들이 몇 명쯤 남아있냐?” “한 20명쯤 되는데요.” “저녁 사줄까?” 그러자 잠시 망설이더니 그러데요. “아니요.” “왜? 배 안 고프냐?” 정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런 거 얻어먹으면 우리가 봉사한 것들이 희석되는 것 같아서 싫다.”였습니다. 그들이라고 왜 저녁을 먹는 게 싫겠습니까? 평소에는 과자나 그런 것들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는 친구들이지만 이날 저녁만큼은 그런 거 안 바라고 순수하게 봉사하고 싶었던 모양이지요. 이래저래 참 기분 좋은 날이었습니다. 축제가 무사히 끝나서 좋았고,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비가 오지도,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지도, 바람이 불지도 않아서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좋았고, 청년들의 순수함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런 것들 안에서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축제를 지내도 이런 기쁨을 맛볼 수 있겠지요? 그럼 다음달에 또 만나 뵈올까요? 그 때까지 모두들 건강하게 주님의 축복 안에 머무시길 기도드립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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