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쓰려고 앉은 순간 창밖으로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강렬했던 태양에 한껏 달아오른 땅의 열기가 한풀 식어지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어제 저녁 본당의 한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본당 마스코트였던 ‘야마’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 식사 자리에서 다른 신부님들에게 야마가 왜 죽었느냐고 물어보니, 나이도 많았고 한동안 심한 더위가 지속되어서 죽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긴 고산지대에 사는 동물이 이 낮고 더운 지역에 내려와서 참 고생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조금은 불쌍한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맛 본 야마고기는 참 맛있었거든요. 하하.
한국에서 혼인 주례를 하거나 혼인에 관한 주제로 강론을 하는 날이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20년 넘게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던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고 같이 사는데 어떻게 성격이 다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연일 인터넷 기사에서 보도되는 유명 연예인들의 결혼과 얼마 지나지 않은 이혼, 그리고 주변 지인들의 이혼을 바라보면서 제 마음 속에서 늘 메아리치던 소리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서로 다릅니다. 헌데, 30년의 세월을 이름조차 모르고 있던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마주치게 된 이 ‘볼리비아’라는 나라의 문화는 얼마나 달랐을까요?
처음 볼리비아에 도착해서 저도 모르게 취했던 행동은 이 나라 안에서 한국과의 어떤 문화적 연계성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이국땅에 나선 저로서는 마치 길을 잃은 아이가 엄마의 모습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그러한 문화적인 동질감을 느끼는 일이 너무나도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길목의 간판에서 익숙한 글자(하다 못해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라도)를 찾아본다거나 한국에 있는 상점이나 건물 같은 것을 떠올려 보며 이곳의 건물들과 대비 시켜서 어떤 연관성을 찾으려고 애를 쓰곤 했습니다.
하지만 달랐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문화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발견한 국산 자동차를 보고 내심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처음 이 곳 산타크루즈 본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서 사람들이 인사를 하자고 내미는 볼에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해하던 내 모습, 코차밤바 하숙집에서 엄청나게 긴 점심식사 시간 동안 홀로 앞에 놓인 접시를 다 비우고 멋쩍어하던 내 모습, 젓가락 없이 포크와 나이프만으로 음식을 먹어야 하고 하숙집 주인 가족이 주저 없이 음식을 손가락으로 집어먹는 모습을 보며 당황해 하던 모습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코차밤바에서 언어를 배우면서 실은 말보다도 문화를 우선적으로 배우고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머물 5년 동안 저는 점점 이 곳의 문화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내 것으로 삼아 또 한 명의 문화적인 볼리비아인이 되어 가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문화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바뀌지 않는 바뀔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내면의 가치들입니다. 사랑, 미움, 분노, 질투, 겸손…이런 등등의 가치들은 제 아무리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해도 바뀔 수 없는 가치들입니다. 만일 모든 것이 문화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들이고 세상의 모든 가치가 상대적인 것이라 한다면, 제가 이렇게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또 사제로서 이 먼 곳에서 일하는 것도 별다른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모두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있고 이 공통된 배경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을 전해줄 수 있고 그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비록 다른 문화에서 건너왔지만 수많은 선교사들이 제각기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소명에 따라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 이 다름에 너무 집착해서 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 ‘사랑, 겸손, 인내’와 같은 것들을 곧잘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다름’은 하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의 서로 다름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름을 서로 존중하고 그 안에서 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을 찾아나가는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를 이 땅에 만들어 놓으신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나와 성격이 다르다고 불목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보는 것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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