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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관구 대신학원 신학생들의 ‘거룩한 독서’ 영성수련기 1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


이동섭(광헌 아우구스티노)|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연구과 1

저희 대구관구 대신학원 신학생들은 연구과(대학원 과정) 진학을 앞둔 겨울방학에는 한 달 동안 한티 영성관에서 영성수련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영성수련은 사제성소를 지망하는 신학생들이 말씀으로 살기 위해서, 나아가 말씀을 선포할 교회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준비하는 중요한 과정이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성수련은 대침묵(오직 하느님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 머무르기 위한 침묵) 가운데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에 따라 성경 말씀으로 기도하는 과정으로써, 성경 한 권으로 한 달 동안 말씀 속에 살아계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달 동안 말씀 속에 계신 하느님과의 이야기를 글을 통해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말로 하느님의 놀라우신 말씀의 체험을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한계가 있기에, 제가 나눌 수 있는 부분에 한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성수련 한 달 동안을 저희는 한 해의 전례력(대림-성탄-연중-사순-부활)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독서도 해당 시기의 독서와 복음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때부터 우리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시기이다. 아기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때인데, 내 마음 속에는 간절한 기다림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분명히 읽기, 묵상을 열심히 하고 기도도 바쳤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이 공허하다. 묵상 글에 아기 예수님을 기다린다고 몇 번이나 썼는데도 예수님은 내 마음 속에 계시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성탄을 맞이하였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이 기쁜 날, 나는 말씀 속에 계신 그분이 진실로 보이지 않아서 참 슬프다. 이유가 무엇일까? 분명 거룩한 독서에 따라 기도를 바쳤는데, 왜 이렇게도 말씀은 무미건조한지 모르겠다. 예수님께서 이런 나의 못난 모습을 가엾이 보셨던 것일까? 성탄의 늦은 밤 시간, 나는 말씀 속에서 포대기에 싸인 아기 예수님을 만났다. 그 때 나는 지금까지의 나의 잘못을 깨달았다. 내 힘으로 성경의 말씀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덤벼든 나의 강한 의지가 연약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 앞에 모두 꺾여버린 것이다. 그분께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나를 감싸고 계시다.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따뜻하다.
연중시기이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말씀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그분의 말씀과 움직임, 기적 앞에서 참 많이 놀라게 되었다.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수많은 병자를 낫게 하시며,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보면서, 수많은 사람이 그분께 엎드려 경배할 때 함께 경배하고, 그분을 뒤따라 몰려갈 때 함께 뒤따라갔다. 예수님께서 이렇게나 위대한 분이신지 몰랐다. 내 두 눈을 비롯한 전 존재는 그분만을 향하였고, 그분 앞에서 나는 정말로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분께서 사람들을 이렇게나 사랑하시는지, 나를 이렇게나 사랑하시는지 놀라고 또 놀랐다.
그러던 어느 날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시라고 하신다. 그래야지 내가 살 수 있다고 하신다. 나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사랑이 당신을 먹을 수 있도록 내어주신다는 말에 너무 놀랐다. 예수님의 사랑이 도대체 무엇인지 무서웠다. 그리고 미사를 드리고 성체를 모셨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직접 오시어 내 입안에서 녹아 부서진다는 사실에 나의 온 존재가 흔들림을 느낀다. 그분의 사랑이 나의 이성적인 사고를 넘어섰나 보다. 말씀이 살아서 당신의 몸을 모시고 있는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일까?
사순시기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만 한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내 앞에서 지금 말 없는 어린양처럼 묵묵히 걸어가시고 계시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분께 외친다. “도대체 왜 아무 죄 없는 당신이 이렇게 죽으셔야 됩니까?” 내가 무슨 생각으로 예수님께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성경 말씀대로 그분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고개를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고 싶은데 바라볼 수가 없었다. 십자가 앞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분의 사랑이 나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엄청난 사랑 앞에서 울기만 했다.
부활시기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 분명히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그분께서 다시 살아서 다가오신다. 놀랍다. 그리고 이제는 말씀이 내 눈 앞에서 제자들을 통해 온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십자가의 그 놀라운 사랑이 부활로 모두 드러났다. 지금까지 받은 사랑에도 지극히 감사한데, 그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하신다.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우리를 일으켜 세워, 세상 속에 우뚝 세우신다. 기쁘고 힘이 난다.
나는 기도한다. “말씀으로 제게 다가오신 예수님. 당신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께 고백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기를 청합니다. 제가 당신의 사랑에, 놀라운 그 사랑에 졌습니다.”
 
지금까지 말씀과 함께 한 저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성수련을 한 우리 모두의 여정이 되었고, 동시에 우리 모두의 여정은 저의 여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농부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보살핌 아래, 예수님이라는 한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말씀 속에 계신 예수님께서 제게 한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한 말씀입니다. 이 모두는 저희들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이끄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말씀 속에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말씀은 우리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말씀 속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간절히 만나고 싶은 이들을 모두 움직일 것이라 믿습니다. 한 달 동안 이끌어 주신 저희들의 영적 동반자 신부님들과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주신 한티 영성관 수녀님들과 도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