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환경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소포 한 상자를 받았습니다. ABC 초콜릿 한 묶음과 더불어 온통 약품이 들어 있었습니다. 물파스로부터 시작해서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이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지금 여름입니다. 아니 사실 1년 내내 더운 기후이면서도 특히나 한국을 포함한 지금의 북반구가 겨울인 이때에 이곳은 지구의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 시기적으로 지금이 더 덥습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금새 끈적끈적해지는 날씨입니다. 대구가 덥다 덥다 하지만 이곳의 강렬하고 끈적이며 지속적인 더위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툭하면 비가 오는데다 길도 거의 포장되어 있지 않아 곳곳에 진흙길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나마 시내에 나가면 아스팔트 길(사실은 거의 시멘트 길입니다.)이 있지만 배수시설이 엉망이라 비가 오면 물에 잠기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일전에도 복사단 소풍을 가려고 나서는데 버스가 진흙길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신부님에게 요청해서 트럭을 불러 겨우 끌어내고는 본당으로 가는데 잠시 후에는 그 트럭이 진흙길에 빠져버리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곳 산타크루즈 환경의 한 단면입니다. 제가 자는 방 벽으로 도마뱀이 기어 다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 위로 자그마한 개미들이 한 식구마냥 기어 다닙니다. 약을 아무리 쳐도 방구석 어딘가에 모기가 도사리고 있고 방충망을 아무리 잘 닫아놓더라도 자그마한 날파리들이 책상 위를 뒤덮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모기를 싫어하던 제가 지금 이곳에서 모기에 물린 다리를 벅벅 긁으며 살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에어컨으로 사제관을 냉장고로 만들어 놓고 살던 제가 자그마한 탁상용 선풍기 바람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여 옷에 흙이라도 묻을까 조심조심해 하던 제가 비가 오면 아예 진흙탕이 되는 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적응’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고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어떤 극한의 환경 앞에 놓인다 하더라도 사람은 자신이 살아갈 길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결코 ‘적응’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 내면의 어두움입니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유혹 그리고 죄, 이런 것들은 아무리 적응하고 싶어도 적응할 수 없는 요소들입니다. 아무리 더워도 적응할 수 있지만, 깊은 곳에서 올라와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욕망의 유혹에는 적응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벌레가 많아도 적응할 수 있지만, 내 마음을 후벼 파는 차가운 말 한 마디에는 적응할 수가 없습니다.

흔히 ‘환경’을 탓하면서 ‘마음’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돈이 없는 집에서 태어나 지금 내 사는 모양새가 이렇노라고, 인물이 못나게 태어나 사람들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기회도 주어지지 않노라고, 세상 꼬라지가 엉망이라 그 탓에 지금 내 꼴도 이렇노라고 투덜대기만 할 뿐, 정작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움은 하나도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환경’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나의 ‘마음’입니다.

이번 달, 고해성사 안에서 주님 앞에 나아가 나의 마음속의 어두움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내 주변의 ‘환경’을 밝게 물들여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