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내 마음의 책 한 권
《우동 한 그릇》의 나비효과


김윤현(베드로)|시인, 만촌성당

구리 료헤이가 쓴 《우동 한 그릇》의 줄거리는 이렇다. 섣달 그믐날 우동집 북해정이 가게를 닫으려할 무렵 두 명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온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여자가 우동 한 그릇을 시키자, 주인은 면을 더 넣어 손님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삶아 낸다. 그들은 우동 한 그릇으로 맛있게 먹은 후 한 그릇 값 150엔을 지불하고 간다.

다시 신년을 맞이한 북해정은 바쁘게 한 해를 보내고 연말을 맞이한다. 밤 10시를 막 넘긴 시간에 다시 세 모자가 들어오자, 주인은 여자의 옷차림을 보고 일 년 전 섣달 그믐날의 마지막 손님임을 알아본다. 주인이 작년과 같은 테이블로 그들을 안내하자 여자는 다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한다. 세 모자는 우동을 먹고 역시 150엔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선다.

그 다음 해의 섣달 그믐날밤은 어느 해보다 장사가 번성하였다. 역시 밤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주인은 차림표를 뒤집어 200엔으로 오른 우동 값을 150엔으로 바꾸고 세 모자가 앉았던 테이블에 ‘예약석’ 팻말을 놓아둔다.

이 날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자 세 모자가 들어온다. 형은 중학생 교복을 입고 동생은 형이 입었던 옷을 입고 있으나 여자는 예전에 입었던 허름한 반코트차림 그대로다. 이번에는 우동을 2인분 시킨다. 이윽고 세 모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보험료로 지불하지 못한 나머지 돈을 갚느라 힘들었던 일, 동생이 학교에서 쓴 작문이 뽑혀 전국 경연대회에 출품되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우동을 먹은 후, 우동 값 300엔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간다.

다시 일 년이 지나 북해정에 주인들은 세 모자를 기다리지만 여러 해가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북해정은 장사가 번창하여 내부수리를 하면서도 세 모자가 앉았던 테이블만은 그대로 둔다. 새 테이블들 속에 낡은 테이블을 의아해 하는 손님들에게 주인은 그간의 사정을 얘기를 해주게 되고, 그 얘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아주 유명해진다.

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섣달 그믐날밤, 이번 해에도 세 모자가 앉았던 테이블은 빈 채로 신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북해정에 모인다. 바로 그 무렵 문이 열리고 정장차림의 두 청년과 한 여인이 들어온다. 주인이 죄송하다며 자리가 없다고 말하려던 참에 여인은 우동 3인분을 시킨다.

십수 년 전 세 모자를 생각하며 주인은 당황한다. 청년은 우리가 14년 전 모자 셋이서 우동 한 그릇을 시킨 사람들인데, 그때의 우동 한 그릇에 용기를 얻었으며 의사시험에 합격하여 내년부터는 삿포로의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했다. 동생 역시 은행에 다니고 있는데, 삿포로의 북해정에 와서 우동 3인분을 시켜 먹는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이 눈물을 흘리며 세 모자가 예전에 앉았던 테이블로 안내하자 가게 안은 감동의 바다로 출렁거린다.

일본에서는 섣달 그믐날이 되면 우동 가게들은 일 년 중 가장 바쁘다. 섣달 그믐날의 풍습인 해 넘기기는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첫 참배를 가는 것으로 관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날은 손님이 가장 많아 우동집 주인은 일 년 중 제일 바쁘게 보내는 날이다. 이런 날에 일 년에 한 번 와서 세 사람이 우동 일인분을 시킨다면 우리는 북해정 주인처럼 손님 몰래 면을 좀 더 넣어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을 위해 예약석으로 정해놓고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남을 위한 배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처지를 바꾸어 보는 것에서 배려는 시작된다. 배려에는 용기와 희망이 가득하다. 자신을 계곡처럼 낮게 아래로 내려와 동행하는 작은 배려는 지친 이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어 희망의 길을 밝혀준다. 가난하여 일 년에 한번 외식에 우동 한 그릇을 시킬 수밖에 없는 세 모자의 처지에 대한 우동집 주인의 따뜻한 배려와 인정어린 친절은 세 모자가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이 되었다.

큰 아들은 의사로, 작은 아들은 은행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엄청난 나비효과다. 우동 한 그릇에 담은 조그마한 배려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한 인간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어린 아이들은 조금의 고통에도 쉽게 좌절하고 힘들어 하며 낙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동 한 그릇에 담긴 따뜻한 사랑은 그들에게 태산 같은 희망이 되어 주었다.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 우동집 주인의 말이 세모자에게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들렸다 하니, 배려는 담요처럼 따뜻하고 붕대처럼 힘이 된다.
 
배려는 주인과 손님의 관계처럼 선택이 아니라 공존의 원칙이다. 사회는 경쟁이 아닌 배려로 건강해진다. 배고픈 세 모자에게도 우동 한 그릇을 친절하게 제공하는 것처럼 배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세 모자에게 예약석을 마련해주는 것처럼 배려는 사소한 것 같지만 위대하다. 배려는 서로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인간에 대한 배려가 최대의 사랑이다. 배려만큼 더 큰 사랑은 없을 것 같다. 배려는 자신을 배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다른 사람 그리고 환경까지 배려할 수 있게 된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대로 다른 사람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잘 보살펴 주는 것이 진정한 배려다.

성경의 말씀처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 우동집 주인 부부의 배려는 감동 그 자체다. 감동의 여운은 바다처럼 끝없이 출렁거린다. 《우동 한 그릇》은 30분 만에 읽는 이를 배려의 형질로 변화시키는 마력이 있다.


* 김윤현 님은 영진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시를 쓰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들꽃을 엿듣다》, 《사람들이 다시 그리워질까》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