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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을 떠나 보내며
그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께로 돌아가다


취재|김선자(수산나) 기자

‘2009 대구대교구 상반기 사제연수’가 한창이던 2월 16일(화) 오후 6시 12분,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자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며 한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권익을 위해 일생을 바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향년 87세로 선종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이에 대구대교구는 주교좌 계산동성당, 군위 김수환 추기경 생가, 김천 황금동성당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이튿날인 17일(화) 오전부터 조문객을 받기 시작했고, 추모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수생(미카엘, 계산성당) 자원봉사자는 “여러 행사에서 봉사를 했지만 이토록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처음본다.”며 “새삼 추기경님의 일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말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하늘도 슬퍼하는지 장례미사 하루 전날인 19일(목)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진눈깨비는 오후 7시, 총대리 조환길 주교의 주례로 집전된 마지막 추도미사가 봉헌될 때도 그칠 줄 몰랐다.

조환길 주교는 강론을 통하여 “한평생 당신의 사목 표어인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말씀처럼 사신 추기경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었고, 신앙과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침을 주신 분으로 돌아가신 지금도 남은 이들에게 화해, 용서, 사랑의 가르침을 일깨워주고 있으며, 임종하시는 순간 남기신 ‘고맙다.’라는 말씀은 오히려 우리가 추기경님께 드려야 하는 말씀이었다.”면서 “당신의 죽음으로써 서로 의견 대립을 보이며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던 이 사회에 사람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정신적이며 모범적인 가르침을 남기고 떠나시는 추기경님께서 무거운 짐을 지고 그동안 많이 힘드셨을텐데 이제는 하느님 품안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한다.”고 애도했다.



17일(화) 조문에 이어 추도미사에 참례한 정금숙(로사, 만촌성당) 자매는 “종교를 떠나 가장 인간다운 삶이 무언지 모범을 보여주신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우리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신 추기경님의 삶을 본받아 이웃을 사랑하고 나누며 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추기경이 고등학교 은사라고 밝힌 이옥분(우달리까, 용계성당) 릴리회 회장은 “지난해 병문안을 다녀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떠나실 줄 몰랐다.”면서 “한평생 다른 이들을 위해 늘 내어 놓으셨기에 가진 게 없는 중에도 우리 릴리회를 위해 매달 10만 원씩 후원금을 보내주셨을 정도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나누는 일에 늘 헌신적인 분이었다.”고 심정을 전했다. 이어 “그런 분을 떠나보내게 되어 너무나도 슬프지만 이제는 하느님 품안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2월 20일(금) 오전 10시, 국민적인 애도 속에 교황장으로 거행된 장례미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한국주교단과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되었다. 각막 기증 등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베풀고 떠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유해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 공원묘지 내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으며, 묘비에는 고인의 사목 표어와 평소 좋아했던 성경 구절 중 하나인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시편 23,1)’는 문구가 새겨졌다. 한편, 장례미사 이틀 뒤인 22일(일)에는 명동대성당, 장지인 용인과 더불어 전국 각 교구 성당에서는 추모미사가 봉헌되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께로 가셨지만 그분이 보여준 진정한 신앙인, 참된 인간의 삶과 정신은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토록 살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