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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을 떠나 보내며
김 추기경에 대한 단상(斷想)


이종흥(그리산도)|신부, 몬시뇰

김 추기경이 선종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좀 넘는다. 지난 2월 16일 그가 선종하자 모든 언론과 방송매체가 매일 대서특필하여 약 한 주간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했던 그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애도, 추모, 추앙 그리고 그의 삶과 업적과 정신의 평가는 길이 이어지리라고 믿는다. 나는 그러한 사실들을 보면서 한국 천주교회의 위상이 새삼 높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런 감정과 느낌은 나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가 그러했으리라고 믿는다.

생존 시에 김 추기경 하면 한국 교회의 어른으로서 그의 지위와 품위에 걸맞는 존경심과 사회적으로도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인정받았지만, 그가 선종하자 갑자기 위대한 분으로 부각되고 추앙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40만 명이 넘는 추모객의 행렬과 함께 온 국민이 같은 심정으로 조문의 행렬에 참여했다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마침 우리 사회의 현실은 모두가 대립, 갈등, 분열, 증오와 폭력, 부정과 불의로 일관되고 있고, 거기에다 경제적 불황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김 추기경의 사건은 새로운 빛과 희망을 주는 것같이 생각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빛이 더욱 빛나고 실의와 절망에 빠진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가 되기를 기대했고,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김 추기경의 기적적인 이번 사건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사건으로 한번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다. 왜? 과거의 역사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선과 진리, 사랑과 정의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배제하고서는 어느 것 하나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을 땅에 묻은 지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도 당장 우리의 정치와 사회의 모습은 하나도 달라지고 있지 않다. 민주주의의 전당이라고 하는 국회의사당이 폭력의 전당이 되고, 지긋지긋한 촛불시위가 되살아나고, 일치하고 단합해도 살아나기 힘든 판에 파업과 투쟁이 되살아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김 추기경이 “사랑하세요. 용서하세요.”하고 남긴 말씀은 어디서 찾아 볼 수 있는가?

종교와 이념과 빈부의 격차를 초월해서 김 추기경의 시신 앞에 머리 숙여 조문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김 추기경이 가고 난 다음 고작 들리는 말은 장기기증과 안구기증의 숫자가 좀 늘어났다는 것 외에 다른 아무 말도 없다. 그것도 과연 얼마나 계속 될지? 감상적인 인간의 마음은 감상이 식으면 그저 그만이다. 그렇게 국민의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언론과 매스컴도 그때 그뿐인 것 같다. 김 추기경이 남기고 간 빛은 또 다시 촛불 시위로 바뀐 셈이다.

사실 김 추기경이 남기고 간 것은 그의 업적이 아니고 삶을 통한 그의 정신이었는데도 사람들은 그의 정신의 실체는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업적만을 생각하려 했다. 그의 업적이라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여준 것이었고, 유신 체제하에서 유린당하는 인권을 위해서 바른 말을 한 것이 업적의 전부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거액의 재산을 내놓을 수도 없었고 그런 능력도 없었다. 그리고 인권과 정의를 위해서 폭력이나 시위로 대항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바른 말을 했고 남이 못하는 쓴 소리를 했을 뿐이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자기가 맡은 책임을 다한 것뿐이다. 나는 그분의 지위와 직분에 맞는 소임을 다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각 사람이 자기 지위와 직분에 맞는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고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하다면 자기 책임을 다하는 그것이 위대하다고 할 수는 있다. 모든 사람이 그것도 못하니까 말이다. 따지고 보면 위대할 것도 없는 일이고 그저 평범하고 당연한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평범한 삶이지만 그러한 삶을 통해 하느님을 간증하였다는데서 그의 위대함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세상을 끝내고 가는지를 본보기로 보여준 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삶에서 그의 위대함을 생각한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왔다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아버지께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김 추기경도 그대로 살다가 간 것뿐이다. 추기경이 “사랑하세요. 용서하세요.” 하고 남긴 말씀은 새로운 말도 아니고 놀라운 말도 아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그것을 못 보는 것 같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나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한번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왜? 한 번은 다 죽음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저 넘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끝으로 나는 김 추기경에 대해 간직하고 있는 추억 한 가지를 남기고 싶다. 나는 김 추기경과 함께 오랫동안 신학교 생활을 같이 했고, 사제가 되어서는 같은 교구에서 사제생활을 했고, 외국 유학 생활도 함께 했고, 그가 후에 주교회의 의장이 되고 나는 주교회의 사무처장으로 가장 인연이 가까웠던 사이였기에 많은 사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중 한 가지 지울 수 없는 인상은 그의 검소한 삶이다. 어려서부터 빈곤한 삶을 살았기에 신학교에서 양말 하나를 제대로 신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양말 없이 실내화 하나로 해결하기 위해 당시 일본 노동자들이 신는 노동신발인 “찌까다비(地下靴=일본어)”를 유독 그분만이 신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일생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여 그렇게 살았다. 외국 유학시절에도 옷에 구멍이 나고, 단추가 떨어져도, 양말에 구멍이 나도 그대로 예사롭게 생각했다.(그 덕에 다른 사람이 옷을 기워도 주고, 단추도 달아주고, 양말도 사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후에 서울 대교구장이 되었을 때 당시 당가(관리국장)신부로서 교구장님의 판공비를 생각해서 거액의 수표 한 장을 드렸더니 그것을 쓸 줄 몰라 1년이 넘도록 서랍에서 그대로 잠자고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리고 그의 선종 후에도 그의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평생 마음을 비우고 검소한 삶을 살면서 오로지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다가 하느님께로 가신 분으로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