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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우리가 읽어야 할 시대의 표징은?


하성호(사도요한)|신부, 교구 사무처장 겸 월간 <빛> 잡지 주간

1981년 10월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경축행사가 있었다. 주교단 행렬이 입장할 무렵 남쪽하늘 구름사이로 십자가 모양이 나타났다고 성가대 측에 자리한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 십자가를 목격한 신학생 한 명이 “나에게 더 이상의 표징은 필요없다.”고 외치면서 미사마저도 팽개치고 즉시 기차를 타고 광주에 있는 신학교로 돌아갔다. 그 학생은 이제 옆도 돌아보지 않고 사제가 되겠다는 각오를 외쳤던 것이다. 하지만 그 학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신학교를 떠났다.

얼마 전 한 자매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신부님 같이 훌륭하신 분이 나주를 실제로 다녀오셨다면 다른 신부님들과는 좀 달랐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나주에 대한 말씀을 하시려는 것 같아 두툼한 편지를 읽어보지도 않았다. 전국의 교구장 주교님들께서 그렇게도 금하는 그곳에 신자들이 무엇에 현혹되어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다는 말인가? 여의도 광장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를 보고 자신에게 더 이상의 표징은 필요 없노라 외쳤던 그를 만나 참 신앙에 대한 지금의 생각을 새삼 물어보고 싶다.

기적을 찾고, 천상의 메시지를 찾는 신앙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참된 표징이 있다. 사는 것이 너무 힘에 겨워 태어난 것을 저주하며 하염없이 흘리는 저 외롭고 불쌍한 이들의 눈물이야말로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표징이다. 그렇게도 희망에 차 외치던 세계화가 몰고 온 경제적 지표는 우리 주위에 줄도산을 가져왔고, 고급 승용차와 빼어난 미모에 현혹되던 현대인에게 강호순이 돌아온 영웅처럼 출현하지 않았는가? 병들대로 병든 사회의 갖가지 모습과 눈물은 우리 신앙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 시대의 표징인 것이다.

그리스에 있는 어느 성당의 성화가 생각난다. 신망애(信望愛)를 사람으로 표시하였는데, ‘신망(信望)’은 노인으로 표현하였고, ‘애(愛)’는 젊은 소년으로 표현하였다. 어느 신부님이 그 성화를 보고 “사랑은 소년처럼 계속 성장하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참된 신앙인은 복 받는다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외치는 것들에 온통 정신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과 희망을 이웃과 나누는 사랑의 실천에 전력을 쏟는 사람일 것이다. “사랑이 있는 그곳에 하느님이 계신다.”(Ubi caritas, ibi Deus)

우리는 성찬례를 거행하고 성체를 배령하는 신앙인들이다. 성찬례는 하느님 아버지께 생명을 바치는 그리스도의 제사이고, 성체는 우리 인간들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자신을 나누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이 진리를 실제 삶으로 옮기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루하루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앙인이다.

참된 신앙은 시련 가운데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세상이 고통스러워지기를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눈물바다가 된 세상 안에서 참된 신앙은 반드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올 한 해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 한다. 가난 때문에, 갖가지 폭력 때문에, 힘이 없어 고통당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모든 사람들을 내가 다 책임질 수야 없지만 단 몇 사람에게라도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