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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파견 연수기
낯선 곳에서의 한 달, 그리고…


조동혁(아우구스티노)|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2학년

신학생의 방학, 신학교에서의 첫 겨울을 보내는 저는 필리핀으로의 꼭 한 달하고 이틀의 파견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지난 한 달간의 시간을 돌이켜보며 그동안 만나왔던 많은 이들을 기억합니다.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그곳에서 만나기 이전에는 결코 서로를 알지 못했던 그들을 떠나오며 헤아리기 힘든 아쉬움과 감사에 참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 달은 아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처음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떠날 시간이 되자 저는 많이 흥분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사실 처음 해외로의 여행이기도 하였고, 동기들이 함께 공부하기 위해 파견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닐라에서의 첫 날, 그리고 바기오로의 긴 이동과 산 파블로 신학교에서의 첫 인사, 우리가 공부하였던 어학원에서의 첫 만남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도착 후 저희는 신부님과 함께 작은 경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에서 머무르며 제가 느꼈던 감동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일간의 수업과 산 파블로 신학교에서의 일정, 그리고 주말을 맞아 떠나는 조별 여행에서 저는 산 페르난도, 헌드레드 아일랜드, 비간 등지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기억이 제게 특별히 강하게 남아있어, 이를테면 저는 그 아름다운 도시의 곳곳을 보고 많은 이들을 만나보았고 대화하였으며, 함께 떠나온 동기들과 더불어 그곳의 역사와 여러 기념물들을 구경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에는 주교좌성당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그들의 신심에 감탄하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연수가 끝난 이후에는 민도르로 자유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스노우쿨링 등을 하며 참으로 잊지 못할 체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바기오가 우리 파견의 중심지였습니다. 저희는 산 파블로 신학교에서 매일 도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어학원으로 강의를 들으러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저희는 매일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공부하였고 때로는 피로에 지친 어깨를 좁은 지프니 안에서 기대어 웃곤 하였습니다. 저희는 많은 현지 강사와 대화하였고 그들의 생활과 관심사, 때로는 그들이 지니는 가치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저희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그들의 모습을, 때때로 강의 도중 휴강 시간에 그곳 주교좌성당으로 떠났던 순간들을, 필리핀 사람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기 예수님의 모습이 성상으로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반기는 ‘산토 니뇨’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여행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그곳에서의 체험이 저로 하여금 그네들 삶을 배우도록 하였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곳의 여러 본당에서 미사에 참여하며,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과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같은 신앙과 같은 신비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아마 특별한 의미에서의 교육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어떤 의미로는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떠나온 이 순간, 무언가 시원하지만 또 무언가 못내 아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을 느끼며, 언젠가 떠나가시던 은사 신부님께서 남기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언제나 떠날 채비를 하고, 그러나 영원히 머무를 듯이.”

한 달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만나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히 머무를 듯이 그러나 언제나 떠날 채비를 하고 지내왔던지 돌이켜보며, 저희의 떠남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떠나가는 저희 뒷모습이 참으로 축복일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비록 여전히 가난에 지친 이들이 너무나 많은 그곳, 그럼에도 자신들 삶의 의미를 반추하며 가난하게 사신 그리스도의 고통과 스스로 가난한 삶의 고통을 하나로 이해하며 힘과 용기를 내는 그들, 또한 역사가 보여주는 시민의 힘과 신앙, 그리고 그들이 건네주었던 환대와 함께 저는 그들의 학교, 그들의 교회, 그들의 경험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떠나오면서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한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끊임없이 사랑하기’인데, 아마도 끊임없이 사랑한다는 건 끊임없이 그리워한다는 것에 다름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제 가슴과 제 두 눈 속에 새긴 그들이 떠올라서 문득 가슴 벅찬 행복과 그리움으로 글을 적습니다. 만일에 그들이 없었더라면, 만일에 저희들이 없었더라면, 만일에 교회가 없었더라면 숱한 필리핀 신부님과 수도자들, 다양한 환경 속에 만난 이들, 새 친구들, 그 많은 아이들, 함께 사제의 길을 걸어가려 하는 필리핀 형제들에 대해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하여 저는 벅찬 감동으로 그들을 떠올리며 다만 이 마지막 인사만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Salamat!(감사합니다!)”“Pa alam!(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