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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를 찾아서 - 성동성당 빌기공소
신앙은 삶의 한 부분


취재|박지현(프란체스카) 기자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사순 제1주일, 경주 성동성당(주임 : 이정추 바오로 신부) 빌기공소를 향해 길을 나섰다. 건천 톨게이트를 지나 국도를 30여 분 정도 달려 빌기공소가 있는 경주시 내남면 비지리에 다다랐다. 비교적 높은 고지대에 위치하여 신선한 공기와 실개천이 흐르는 마을은 아늑한 시골 정취가 느껴졌다.
마을 주민들의 안내로 쉽게 찾은 빌기공소에는 10여 명 남짓한 신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른 시각에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며 반갑게 기자를 맞아주는 진병준(도마) 공소회장은 “10시부터 공소예절이 시작된다.”고 알려준다.
빌기공소에는 매주일 아침 10시 공소예절을 드리고 있으며, 매달 마지막 주일에는 성동성당 사제가 와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천주교 박해시대부터 시작된 빌기공소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정확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입으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전부지만 대대로 이곳에 살면서 신앙을 이어온 그들의 기억만큼 정확한 자료는 없을 터,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최정자(데레사) 씨가 “일제 말기 무렵 마을을 지나던 소금장수에 의해 시증조부(김상곤 비오)께서 입교하시며 빌기공소가 시작되었다.”면서 “당시 이웃에 살던 서택구 씨와 의형제를 맺어 마을 사람들에게 전교를 시작한 시증조부께서 자신의 초가집에서 신자들과 함께 어렵게 신앙을 이어갔다.”고 말하자 진병준 회장이 “이후 천주교 박해에서 해방되었지만 공소건물을 마련하기 힘들 정도로 여전히 상황은 힘들었고, 일 년에 두 번씩 외국 사제가 신자들에게 판공성사를 주기 위해 빌기공소를 방문하였다.”고 들려준다.

그렇게 빌기공소의 신앙은 3-4대에 이르는 현재 신자들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대부분 이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는 진병준 회장은 “예전에는 사제가 자주 방문하지 못하는 탓에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면 3일 이내에 세례명을 지어주고 후에 사제가 방문하여 정식 세례를 받곤 하였다.”면서 “우리에게 신앙이란 이 세상에 빛을 보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차츰 도심지로 떠나 이제 빌기공소 신자 수는 아이들을 포함하여 20여 명 정도. “몇 안 되는 신자들이 오늘따라 많이 빠졌다.”며 아쉬워하는 진병준 회장의 말에 옆에 있던 최정자(데레사) 씨는 “우리 집에는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까지 신자가 6명이나 되는데 각자 사정이 생겨 나 혼자 오게 되었다.”며 오히려 미안한 기색이다.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빌기공소에는 3년 전부터 신학생이 파견 되고 있다. “그동안 신자들끼리만 지내다가 신학생이 상주하며 신자들과 함께하며 여러 가지 도움을 주니 참 좋다.”는 이재화(보리나) 씨는 “그동안 방학이었지만 이제 3월이니 곧 올 것.”이라며 신학생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령대가 높은 탓에 특별히 다른 모임을 가질 수 없지만, 주님을 향한 공소예절과 미사만큼은 항상 정성스레 준비하고 있다.”는 진병준 회장은 기자와 이야기 나누는 틈틈이 신자들에게 부활을 기다리며 사순시기를 맞이하여 매주 금요일 십자가의 길을 함께 하자, 성동성당에서 마련되는 특강에 참석하러 가자는 등 주님의 자녀된 도리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여념이 없다.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성심성의껏 공소를 이끌어나가겠다.”는 진병준 회장과 “매일 매일을 주님께 감사하며 살 뿐.”이라는 빌기공소 신자들. 그들에게 신앙이란 그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