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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사목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며 교사 피정을 했습니다. 강의 하나를 맡아서 해보겠느냐는 호세 신부님(석상희 요셉)의 제안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대신에 성시간을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스페인어로 진행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교사 피정 때에 쓰던 영상물을 보여줘야겠다 싶어 에스테반 신부님(김종률 스테파노)에게 부탁해 한국 노래 가사를 스페인어 자막으로 만들고 편집을 해서 수 시간의 작업 끝에 완성을 했습니다. 결과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시간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저마다 좋았다며 웃음지어 보였거든요. 서툰 언어에 내가 잘 해낼까 마음 졸였는데 다행입니다.

이번 주제는 ‘사목’으로 정했습니다. 사실 산타크루즈에 내려온 지 이제 겨우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곳의 ‘사목’에 관한 것을 말한다는 것은 좀 성급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주제를 통해 저희 볼리비아 선교 사제들의 삶을 가장 잘 엿볼 수 있을 듯싶고, 또한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저로서 그나마 제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좀 무겁게 느껴지는 단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저희들 삶의 모습을 그려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곳의 사목이라는 주제로 무엇보다 먼저 ‘미사’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사제로서 늘 드려야 하는 미사이지만 이곳의 미사가 조금 특별한 이유는 수많은 공소들 때문입니다. 매 주말이 되면 저와 신부님들은 차를 몰고 나서기에 바쁩니다. 일단 공소들의 숫자는 총 14개입니다. 사실 저는 아직 그 이름들도 다 외우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스페인어라서 더욱 그렇겠지요. 게다가 공소들의 거리들이 짧게는 수 킬로미터에서 멀게는 120 킬로미터에 이릅니다.

게다가 비가 오면 길의 상태도 엉망이 되기 일쑤이고 차들의 상태 역시 썩 좋은 편이라 할 수 없어서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행여 멀리 떨어진 공소를 가다가 차가 고장 나 버리기라도 한다면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덧붙여 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강론입니다. 한국에서 한 말빨 세운다고 자신하던 내가 이곳에서는 벙어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결코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이곳에서 강론 준비는 사목생활의 큰 덩어리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긴 하겠지만 여전히 주일 강론을 적으면 A4 용지 반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는 것이 저의 현실입니다.(그 때문에 미사가 짧다고 좋아하는 신자도 있긴 합니다.)

다음으로는 수많은 단체들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담당하고 있는 복사단 모임, 제대회 모임, 사회단체, 레지오 마리애, 앞으로 해야 할 성가대 모임 등등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선배 신부님들이 편의를 많이 봐주는 편입니다. 에스테반 신부님 같은 경우에 반모임을 전담하고 있고, 호세 신부님의 경우에는 주일학교를 전담하고 있는 실정이라 제가 맡은 작은 단체들로는 앓는 소리를 하기도 힘든 형편입니다. 다른 선배 신부님들도 여전히 언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겠지만, 저는 아직 일상회화도 서툰 수준이라 이런 모임에 가서 누가 질문이라도 해 오면 “그게 무슨 뜻이죠?”라고 되묻기가 일쑤입니다. 게다가 문화적 차이도 있어서 여전히 모임에 가면 제가 뭔가를 이끌어 가기  보다 오히려 뭔가를 배워 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미사를 제외한 성사와 준성사들 역시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한국 역시 무속 신앙과 교회의 신앙이 섞여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면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곳 역시 만만찮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세례, 첫영성체, 견진, 병자방문 등등 여러 가지 것들이 있지만, 특히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장례 당일, 무덤, 9일, 1개월, 1년 등등으로 있어서 그때마다 부탁이 들어오면 그때마다 가 주어야 합니다.



이제 막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참인데 지면이 다 되어가네요. 이번 사목이란 주제를 통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모든 일들이 모두 ‘만남’에서 시작하고 우리가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좋은 이상과 아이템을 지니고 제 아무리 먼 선교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간의 만남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낯선 곳, 낯선 문화 안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적잖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용기를 내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여러분 주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이번 달, 주변의 지인들에게 손길을 내밀어 주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소개비는 제가 하느님께 부탁해서 두둑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