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성소(聖召), 그 부르심의 길을 걸으며
하느님, 당신이 계시기에….


박광훈(안드레아)|신부, 프랑스 유학

제가 중·고등학생이었을 때 늘 지니고 다녔던 좌우명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엄마는 청소부’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의아하시겠지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장남인 제 나이가 열 살 그리고 제 밑으로 어린 동생 두 명과 어머니, 이렇게 네 식구가 덜렁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어려서 잘 몰랐지만, 아마도 어머니의 심정은 몹시도 암담했을 것입니다.

어린 자식들을 위해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어머니는 병원 청소부로 취직을 해야 하셨습니다. 마침 그 병원은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병원이었는데, 자식 셋을 데리고 혼자 살기 힘들었을 어머니께서 선택한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병원 일을 하시게 된 어머니는 신앙을 가지라는 수녀님의 인도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집안에 신앙이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저는 등록금을 제 때 내지 못해서 교무실에 불려가기도 했고, 집이 없어서 쫓겨 다니기도 하였으며,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없어서 당하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을 참 많이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나이에 저는 빨리 돈 많이 벌어 성공해서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의 생각이 완전히 바뀐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바로 밑에 동생이 큰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큰 수술이라 위험 부담도 무척이나 컸고, 돈도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생전 모르는 사람들이 단지 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위 친척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우리 집안을 도와주었습니다. 그 때 받은 저의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랑 때문에 저는 행복했습니다. 우리 식구 모두 기뻐했습니다.
그 일로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해야 되겠다는 평소 저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행복과 기쁨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제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사제가 되려고 했을 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돈 벌어서 성공해야지, 혼자 남은 어머니와 아픈 동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너는 너만 잘 살려고 하는 불효자식이다….” 등 많은 말들을 들어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의 제가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늦은 밤, 자고 있던 저를 어머니께서 깨우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난 우리 하느님께서 우리 아들을 좋은 신부로 이끌어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순간 어머니의 그 한 마디 말씀이, 어렵게 자식들 키우며 가난하게 홀로 사시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잊지 않으셨던 어머님의 신앙이 저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신부로서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신앙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신앙이 저에게 힘을 주었고, 그 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저를 좋은 길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 작고도 큰 진리를 알기에 신부가 되어서도 처음 가졌던 초심으로 살려고 늘 제 자신을 돌아보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만나는 신자들에게 따뜻한 하느님의 사랑과 넓은 마음을 전해주고자 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저나 우리 집안은 가난합니다. 그러나 참 행복합니다. 제가 외국에서 아무 걱정 없이 이곳의 일에 충실할 수 있는 것 또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언제나 하느님께서 지켜주시고 또 보호해주시고 이끌어주심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지요.
저는 지금 이 순간도 저에게 주어진 이 자리에서, 대구대교구의 신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주어진 자리에서 저에게 보여주신 그 크신 예수님의 사랑을 살기 위해 더욱더 자신을 갈고 닦으며, 넓은 마음과 깊은 생각과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으로 겸손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