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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야기
유치원에 간 신부님


함영진(요셉)|청도성당 주임신부, 청도 성모유치원 교사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연의 ‘유치원에 간 사나이’란 영화가 있었다.
강력계 형사가 마약업자를 체포해 유치장에 보낸 후, 범죄조직을 피해 유치원 교사가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믹 액션 영화이다.
영화를 재미있게 봤었는데 진짜 내가 그런 입장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처음에는 그야말로 ‘유치원에 간 사나이’란 표현이 딱 맞았다. 꼬맹이 녀석들 눈에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선생님이 무척 신기했나 보다. 나를 부르는 호칭도 자기 마음대로였다.
‘아저씨’ 그러다 기분 좋으면 ‘선생님’이고, 아이들과 함께 미사를 드린 날은 ‘예수님’이다. 그저 학교에서 배운 지식뿐인 나이 많은 남자 선생님, 그나마 신부라고 하니까 겉으로 말은 못하지만 학부모들의 눈에도 영 못 미더운 내색이 역력했다.

한 주에 세 번 정도 유치원 수업을 도와주기로 했다. 수업방식하며, 아이들 다루는 요령이 오랜 경력을 가진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가히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을 거다.
나름대로 준비해보지만 온통 실수투성이고 금방 교실 분위기가 엉망이 되고 만다. 자기 담임선생님 말은 온순한 양처럼 잘 듣는데 내가 교실에 들어가면 난리법석이다.
‘요녀석들! 자기 반 선생님 아니라고 만만하게 보고 날 놀리는 거야?’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늘 부드럽고 섬세하고 엄마같은 여선생님들이 줄 수 없는 색다른 면이 나에게는 있다.

일곱 살 남자 아이가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면 여선생님들은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밀어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팔씨름, 구슬치기, 볼링놀이, 초대형 팽이 만들기, 제기차기…. 몸으로 부대끼면서 놀다보면 오히려 여자 아이들이 더 흥미있게 잘하는 경우도 많았다.
거기에다 나는 교사이기 전에 먼저 사제이다. 예수님 만큼이야 하련마는 아이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사랑으로 대하다 보면 그런 마음을 아이들도 조금씩 알게 되겠지, 하는 희망이 있다.
이제 1년이 지났다. 상황이 많이 변했다. 호칭은 ‘신부님’으로 통일됐다. 학부모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ㅇㅇ야, 너 졸업하면 신부님 보고 싶어 어쩔 거야.’ 슬쩍 옆에서 듣고 있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에 강아지 밥 주러 나가면 성당 옆 아파트에 사는 녀석이 베란다 창문으로 고개를 삐쭉 내밀고는 ‘신부님’하고 소리를 지른다.
길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나를 보고는 성당까지 시합하듯 함께 쫓아오는 녀석, 청도역을 지나가는데 문을 열고 뛰어나와 자기 집이라고 가르쳐 주는 아이, 통닭 사러 갔더니 ‘우리 아이 신부님’이라고 깎아 주시겠다는 걸 겨우 말리기도 했다.
수업은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지만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가는 만큼 새록새록 쌓여가는 정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


* 함영진 신부는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99년 대구대교구 사제로 서품받았다. 본당과 기관 사목을 거치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아교육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한 뒤, 현재 청도성당 주임으로 사목하며 성모 유치원 교사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