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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닥종이 인형 작가 최옥자
닥종이 인형으로 만난 정겨운 사람들


김명숙(사비나) 본지 편집실장

그녀의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닥종이 인형들의 군상과 형형색색의 한지가 단박에 시선을 끌어 모은다. 다양한 표정과 몸짓, 더러는 장난기를 머금은 인형의 얼굴들은 유년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17년여 긴 세월 동안 닥종이 인형 작업에 매달려 한 길을 걸어오면서 자신의 열정과 사랑과 마음을 아낌없이 작품에 쏟아 부은 닥종이 인형 작가 최옥자(요세파, 송현성당) 님, 지금부터 그녀만의 작품세계를 만나보려 한다.

 

경주가 고향이라는 최옥자 님은 사실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한 이다. 그런 그녀가 닥종이 인형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1969년 제7회 신라문화제에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장면을 인형으로 직접 만들어 출품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닥종이 인형과의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그동안 국내는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로마, 러시아, 일본, 뉴질랜드 등 70여 회 가까운 국내외 전시회를 통하여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해 온 최옥자 님은 주로 잊혀져 가는 한국적인 소재들을 찾아 작품으로 형상화 하는데 주력해왔다. 뿐만 아니라 작품 소재의 발굴을 위해 쉼 없이 박물관을 드나들며 연구하고 공부를 하는가 하면, 천연염색에도 관심을 갖고 직접 염색한 한지를 이용하여 작품 제작을 한다. 어떻게 염색을 하게 되었냐는 물음에 최옥자 님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색한지는 작품을 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직접 염색을 하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원하는 색을 쓸 수 있을 만큼 되었다.”며 그간의 일을 회고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들로,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하고 놀았을 법한 민속놀이를 위시하여 잊혀져 가는 세시풍속과 사람 사는 이야기, 엄마와 아가의 사랑을 주요 주제로 한다. 그 중 엄마와 아가의 따뜻한 모성애를 그린 작품들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그 작업의 배경에 대해 최옥자 님은 “제가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인지 유독 엄마와 아가의 친밀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들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많은 편.”이라면서 “그러한 엄마와 아가의 사랑 표현의 정점은 성모자상으로 귀결된다.”고 설명한다.

 

가장 동양적이면서 한국적인 작품으로 세계에 닥종이 인형을 알리려 애써 온 최옥자 님은  자신의 작품 완성에만 그치지 않고 후학 양성에도 열성이어서, 현재 서울과 대전의 국립민속박물관과 대학 등지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이미 그녀의 손길을 거쳐 간 제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0년 닥종이 인형작가로는 처음으로 제6회 전국 한지공예대전에서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는 최옥자 님은 앞으로 펼쳐질 몇몇 전시회와 더불어 신앙인으로서 꼭 하고픈 작업이 있다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103위 한국 순교성인들의 모습을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해 보고 싶어요. 물론 그 작업을 하려면 교회사 연구와 더불어 자료 수집 등 해야 할 일이 엄청 많겠고, 또 기간도 3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그렇지만 제가 신자로 살아오면서 하느님께 받은 은혜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꼭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라며 자신의 의지를 내비친다.

 

닥나무에서 추출한 닥종이(한지)는 아흔 아홉 번 사람의 손질을 거쳐 마지막 사용하는 사람의 손이 백 번째로 만진다 하여 백지(白紙)라고 했다 한다. 그만큼 한지를 뜨기 위해 한 장 한 장 정성이 배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닥종이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질감에 ‘조잘조잘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어머니의 무명치마 스치는 소리, 물레소리, 사람 사는 소리, 고향의 소리’를 담아 인형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아직까지도 풀물 개는 일이 정겹기만 하다는 최옥자 님. 그녀는 닥종이 공예작업에 대해 “한 작품 한 작품 풀을 바르고 한 겹 한 겹 덧발라 가면서 원하는 모습의 인형이 될 때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과 정성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라며 “이는 마치 산고를 겪는 아낙네의 심경과도 같다.”고 했다.

 

한지와 인형을 좋아해서 음악의 길을 접고 닥종이 인형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는 최옥자 님. 자신의 분신 같은 인형들은 지금 이 순간도 그녀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무언가를 조잘조잘 속살거리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