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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탈북자 홈스테이가 대구대교구 가정에서도 이루어졌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라 탈북자들이 남쪽 가정의 생활상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야 있었겠느냐마는, 소감을 발표해 달라고 했더니 남쪽의 발전상에 놀랐다는 것과 깊은 동포애를 느꼈다며 감탄사를 거침없이 내뿜었다.
탈북자들의 격양된 소회를 들으면서 왠지 마음 한 구석에선 커다란 연민이 북받쳐 올랐다. 저들이 남쪽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외로움의 눈물을 삼켜야 할까를 생각하니 참 안됐다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현대를 ‘개인과 자유’를 최고로 여기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고 하는데, 이런 사회를 도래하게 한 것은 바로 신자본주의(新資本主義) 사상이다. 신자본주의는 성장과 자유 경쟁을 지향한다. 그래서 신자본주의가 심화된 사회일수록 ‘함께’보다는 ‘제일’을 지향하고, ‘공동’보다는 ‘사유(私有)’를 지향한다.
내가 제일 앞서야 하고, 내가 제일 많이 가져야 한다. 경쟁을 해서 반드시 일등을 해야 하고, 입시에서도 반드시 일류대학에 합격해야 한다. 그런 사고에 젖은 사람들에게는 부정을 저지른들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함께 하기에 내가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한다.
지난 2월 16일 선종하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은 마지막까지 우리 사회에 참으로 고귀하고 위대한 가치와 정신을 새삼 일깨워 주셨다. 그분의 유언대로 각막기증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은 많은 국민들에게 가슴 뭉클함을 느끼게 하였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장기기증 운동에 참여하게 하였다.
장기기증 운동에 과연 어떤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였겠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우리 사회의 일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 운동에 기꺼이 참여하였겠는가? 치열한 경쟁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 것을 나누는 일에 인색하기 마련이다. 욕하고 싶진 않다. 단지 나 자신도 그런 사조에 물든 한 사람이라는 것이 속상할 뿐이다.
보좌신부만 되어도 어른 대접을 받는 세상인데, 하물며 추기경이신 그분이, 한두 번도 아니고 평생 동안, 자신을 낮추시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 바보야, 네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겠는가!” 이 이상 누구를 존경할까! “‘너는 내 밥이다.’라고 하면 제일 기분 나빠합니다. 그래도 우린 남의 밥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밥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제일주의’에 병들었다. 아니 노예가 되고 말았다. 아마 이 글도 흔히 말하는 서민들만 읽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남이 겪는 고통과 아픔을 보면 자신의 고통과 아픔인 양 안절부절 못하고, 눈시울을 훔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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