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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야기
당당하게 지는 법


윤원진(비안네)|순심여자중고등학교 교목신부·철학교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속



만우절. 남자 중고등학교에서는 만우절이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장난치는 녀석들도 없고, 수업시간에도 별다른 준비(?)를 해두지 않는다. 몇 번의 무미건조한 만우절을 보낸 나는 이미 공휴일도, 대축일도 아닌 그 날에 비교적 무감각해진 상태였다. 그러다 올해 순심여자중고등학교로 옮겨오게 된 나는 그 날을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날인 줄 미처 알지 못하였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교문으로 들어서는데 한 여학생이 부끄러운 듯 내게 말을 건넸다. “신부님, 바지 지퍼 열렸어요.” 순간 황급히 돌아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등 뒤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아, 여기는 여학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하루 종일 ‘속지 않으려고’ 조바심을 내며 지냈다. 학생들이 질문을 해도 의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인사를 해도 한 번 더 생각한 다음 답례했다.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오면 ‘속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하며 아이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려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만우절이 도대체 뭔지…. ‘당하지 않으려고’, ‘우스워 보이지 않으려고’ 힘주어 살려니 피곤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선생님들을 만났다.
역시 선생님들에게도 만우절 에피소드는 화젯거리였다.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갔더니 학생들이 한 명도 없고, 칠판에는 “우리는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멀리 떠나요.”라고 적혀 있더라는 선생님의 이야기. 그래서 두리번거렸더니 아이들이 교실 밖 잔디밭에 죽은 척하고 누워 있다가 좋아라고 웃더란다.
다른 선생님은 열심히 수업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입에 거품을 물고 간질이 도졌다며 교실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떨더란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치약거품이더라고…. 이 말을 들은 다른 선생님은 그건 고전적인 수법이라고 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끼리 싸움이 붙어서 뜯어 말리고 보니 학생들이 ‘몰래 카메라예요.’라며 한바탕 웃더란다. 화를 낼 수도 없고 계면쩍은 마음에 어이가 없어 먼 산만 바라보았단다. 선생님을 놀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까….
또 어떤 선생님은 학생이 배가 아프다며 울기에 양호실에 가라고 했더니, 다른 아이들도 서로서로 ‘나도 아프다’, ‘나도 아프다’고 하며 몇 명이나 양호실에 가려고 하더란다. 그래서 다 보내 주셨냐고 물었더니, ‘1년에 한 번 속아주는 거죠, 뭐….’라며 환하게 웃으신다.

이런 말들을 들으며 집에 오다보니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속아줄 걸…. 굳이 속지 않으려고 애쓰지 말고 학생들의 장난에 하루쯤 당해줄 걸….’ 하는 생각과 더불어 하루 종일 ‘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내 자신이 못내 부끄러웠다.
‘나는 선생님이다.’라고 소리치는 교사보다, ‘나는 똑똑하다, 너희들보다 한 수 위다.’라고 자랑하는 어른보다, 애써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힘주는 사람보다 ‘나도 부족한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있게 인정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을까!
그리하여 언젠가 학생들이 이 학교를 기억할 때에 무심코 지나치던 성모상은 잊어버리더라도 까만 로만칼라의 어느 신부님을 속였었고, 그 분은 호탕하게 웃으며 이해해 주시더라고, 그렇게 기억되고 싶다.

우리가 해야 할 교육은, 우리가 해야 할 가르침은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드높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와도 더불어 살 수 있는 보편적인’ 인성을 알려주어야 함이 아닐까. 그것이 Catholic(가톨릭), 곧 보편적인 것이고 이 아이들이 체험해야 할 하느님의 참 모습일 것이다.
내년 만우절에는 어느 누구에게나 속아 줄 것이다. 당당하고 자신있게 ‘져줄 수 있는’ 용기, 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