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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영성수련기 ①
말씀은 저의 모든 희망입니다


글 김종은(안토니오) 신학생|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지난 12월 20일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 영성 수련을 위해 한티순교성지로 갔다. 사실 신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했던 이 거룩한 독서는 해가 더해 가도 나에게 말씀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말씀 안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또 내가 이 말씀을 신학적으로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묵상했다고 자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씀으로 나는 나 자신에게 거짓 위로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서 이 영성수련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는 몇 가지의 의혹을 품고 있었다. 정말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인가 얻을 수 있을까? 진정 말씀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 정말 살아있는 말씀을 체험할 수 있을까? 하는 의혹들이었다. 단순하게도 나는 이 시간 동안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잘 쉬기만 하면 내가 살아가는데 큰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영성수련은 하루에 주어지는 3개의 텍스트를 4시간에 걸쳐 묵상해야 했다. 그래도 진심으로 말씀을 만나는 그 1시간 동안은 성실히 임하고자 노력해 봤다. 그렇게 대림시기와 성탄시기의 말씀들을 만나고 자그마한 말씀의 씨앗 하나를 발견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동반 신부님과의 면담에서 신부님께서는 “말씀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아직 너무 겉돌고 있다.”고 하시며 나의 상태를 식별 해주셨다. 도대체 나는 왜 이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게 답답하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말씀으로 들어가는데 가로 막고 있는 벽을 부순 것은 단 한 마디의 말씀이었다. 마태오 복음의 매정한 종의 비유에서 “만 탈렌트” (마태 18,24)라는 이 말씀이 나의 마음을, 나의 온 존재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 말씀은 정확하게 나의 모습을 직시하게 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자비를 입고 살아왔던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용서를 받았던가! 아니 지금껏 그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크신지 깨닫지도 못했던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되면서, 고작 백 데나리온으로 내 형제를 붙잡아 두었던 내 모습에 너무 죄송했다. 이 말씀이 내 온 존재를 뒤흔들어 놓을 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성체 앞에 머물려고 했으나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산속으로 뛰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회개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너무 죄송했고 너무 부끄러웠다. 너무나 큰 은총의 체험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말씀 안으로 이끌려 들어갔던 것 같다. 내가 이 말씀을 마주하여 나의 지식과 나의 노력으로 무엇인가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교만에서 점점 벗어날 수 있었다. 나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내맡기게 되었다.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나는 또 하나의 큰 은총을 체험하게 되었다. 성령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들에 온전히 신뢰하고자 또 온전히 믿고자 노력하던 때였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마르 14,22)라는 말씀이 너무도 생생하게 내 가슴속에 울렸다. 그제야 나의 닫힌 눈이 열린 것 같았다. 매일의 미사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는 그 모습에서 성체가 정말로 예수님의 몸이고, 바로 그분이시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해하려고만 했던 나는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진정으로 이 성체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예수님은 내 앞에 여기 현존하고 계시는데 지금껏 눈이 가려져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아! 내 앞에 지금 여기 이 눈앞에 있는 이 성체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성체에 대한 나의 태도는 새롭게 바뀌게 되었다. 이 작은 빵의 모습으로 현존해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성령께서 또 이렇게 큰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이러한 은총의 체험들을 통해 말씀 안에서 점점 기쁨을 찾게 되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지금과는 다른 부활을 체험하게 되었다. 말씀하신 대로 살아계신 예수님은 더 이상 죽은 빈 무덤에 계시지 않고 살아서 먼저 갈릴래아로 가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껏 나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빈 무덤 안에서, 그러니까 죽은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진정 말씀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성령의 이끄심을 통해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그 말씀은 부활을 증언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다. 성령께서 나에게 주신 이 살아있는 말씀은 언제나 그분께서 지금 나에게 들려주시는 기쁨 가득한 희망의 메시지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지난 한 달간의 시간은 더 없이 큰 은총의 시간들이었다. 더 많은 체험들을 내 가슴속에 간직할 수 있었다. 성령을 통하여 나에게 들려주신 말씀 앞에 나는 온전히 들으려는 그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씀에 대한 교만은 결국 말씀을 죽게 만들고 점점 힘을 잃어 가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씀을 사랑하고 성령께 온전히 내어 맡김으로써 듣게 되는 이 살아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배우고 위로를 얻고 치유와 은총을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 신학생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너무나 부족하고 참 많은 약점들을 지니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말씀으로 대단한 깨달음을 체험하기 보다는 내 안에 말씀들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내 안에 말씀들을 차곡차곡 쌓아갈 때 진정 말씀으로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 내가 이 사제성소의 삶을 준비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씀들을 붙들고 늘어져야 한다. 온전히 그 말씀에 나의 모든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희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통하여 이미 들은 것입니다.”(콜로 1,5) 말씀은 저의 삶에 모든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