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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이주민이 되어가는……


글 이관홍(바오로) 신부|가톨릭근로자회관 부관장

 “이주사목을 몇 년째 하다 보니, 저도 점점 이주민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어느 교구에서 이주사목을 담당하던 신부님께서 주교회의 국내 이주사목위원회(위원장 : 옥현진 주교) 대표사제, 수도자 회의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전국에서 모인 30여 명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모두 웃으며 “맞습니다.”라고 동의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실제로 이주사목을 위해서 이주민이 되신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온 신부님들과 수녀님들도 있었습니다. 그분들뿐 아니라 이주사목을 하고 있는 한국인 신부님, 수녀님들이 동의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나누어 드릴까 합니다.

한 주가 새로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매주 주일 독서와 복음, 각종 전례문들을 영어로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EUCHALETTE(필리핀에서도 사용하고 있으며, 해외에 거주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만든 전례용 리플릿)을 출력합니다. 그리고 기도문과 독서, 복음을 큰소리로 읽어봅니다. 긴 문장들은 끊어 읽기 표시를 하고, 생소한 단어나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들은 사전을 찾아봅니다. 영어로 주일미사를 봉헌한 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아직도 생소한 단어나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가 있다는 사실에 영어 실력을 탓해 보기도 합니다.

 이어서 또 한 고비(?)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강론입니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힘든 노동으로 한 주를 보낸 이주민들을 어떻게 하면 복음말씀으로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집니다. 자국 뉴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이 이슈가 되고 있는지를 자연스레 찾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SNS에 들어가서 이주민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관심사는 어떤 것인지를 알아봅니다. 각 나라의 특별한 축일이나 고유한 전례, 신심행사가 무엇인지도 살펴봅니다. 아울러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에 대해 특별히 이슈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도 찾아봅니다.

이렇게 매주 주일미사를 준비하다보면 저 역시도 언어적인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또 문화적인 차이를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치 제가 이주민이 된 듯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을 통해서 이주민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이주사목을 담당하고 있는 모든 신부님들, 이주민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모든 신부님들이 매주 똑같이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교구에서 이주사목을 하고 있던 어느 신부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저녁, 여성 미등록 노동자에게서 전화가 와서 출산이 임박했는데 의료보험도 없고 출산할 곳이 마땅하지 않다고 도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일단 신부님께서는 그 여성의 집으로 가서 차에 태우고 출산할 곳을 찾아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병원을 전전했다고 합니다. 급기야 양수가 터지고 나서 한참 지나서야 겨우 출산할 병원을 찾았고 다행히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부가 양수가 터진 외국인 여성을 차에 태우고 병원을 전전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안타깝게 보일 수도 있고 또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님께서는 그 여성이 안전하게 출산하고 난 뒤, 의료보험이 없어서 경제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여러 차례 이른 새벽이나 밤 늦은 시간에 이주민들의 전화를 받고 응급실과 수술실을 전전했었고,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한 기억이 있어서 그 신부님의 노고와 보람을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선교경험은 필리핀에서 짧은 체험뿐이지만 해외선교를 나가면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주사목을 담당하고 있는 전국의 신부님들은 주일미사를 한국어로 봉헌할 때보다 영어로 봉헌할 때가 더 많고, 한국 신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필리핀, 베트남 신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고, 한국문화와 그들의 문화 사이의 경계에서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이주민들이 겪게 되는 삶의 모든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며 병원, 경찰서, 출입국 사무소, 법원, 교도소 등지를 누비며(?) 다닙니다. 이주 사목을 담당하는 신부님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씀이 있다면 아마도 “너희는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마태 25, 35)일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양 냄새가 나는 목자가 되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이주민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필리핀 사람의 냄새가 나는,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베트남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주민들을 위해서 이주민처럼 동분서주하며 고민하고 살아가는 전국의 모든 신부님들, 특별히 우리 교구의 이주사목 담당 신부님들을 위해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