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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지례성당 정상영(마르티노)·김형자(벨라뎃다) 부부
모두 주님 뜻대로


취재 박지현(프란체스카) 기자

 

2016년 교구장 사목교서 ‘가정, 가장 가까운 교회’에 따라 신앙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달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김천 지례성당(주임 : 안병욱 시몬 신부)의 정상영(마르티노)·김형자(벨라뎃다) 부부를 만나보았다.

 

노오란 산수유가 꽃망울을 맺으며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던 3월의 어느 날, 김천 지례성당에서 만난 마르티노·벨라뎃다 부부는 웃는 모습이 참 많이 닮았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벨라뎃다 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 주님의 뜻이구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 신기했어요. 어릴 때부터 유독 몸이 약했던 저는 ‘혹시 종교를 가지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덜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잠결에 들린 종소리를 밤새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 소리가 나는 곳이 성당이라고 확신한 저는 다음 날 걸어서 30분이 넘는 거리에 있는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하필 미사가 없는 날이라 성전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저는 우연히 수녀님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예비신자 교리반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예비신자 교리반에 두 번째 출석한 날 본당 주임신부님께서 갑자기 ‘너는 이제 ‘벨라뎃다’다. 나중에 세례명을 ‘벨라뎃다’로 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그녀는 19세에 ‘벨라뎃다’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비신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딸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뤘지만 매주일 혼자 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부부가 함께 봉헌하는 모습이 부러웠던 벨라뎃다 씨는 ‘저도 남편과 함께 봉헌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항상 기도했다. 평소에 워낙 산을 좋아해 주말마다 등산을 가는 남편에게 성당에 가자고 해도 쉽게 가지 않을 것 같아 그동안 단 한 번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문득 벨라뎃다 씨는 남편에게 같이 성당에 가자고 했고 남편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다음날 당장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한 남편은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맞춘 세례명으로 ‘마르티노’가 되었다.

마르티노 씨는 “처음에는 등산을 가기 위해 항상 토요일 저녁 주일미사에 참례했는데 계속 그러다보니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차츰 주일교중미사에 참례하게 되었고 드디어 벨라뎃다가 그토록 원하던, 부부가 함께 봉헌하는 날이 찾아왔지요. 그리고 특별히 선교한 적은 없지만 신자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벨라뎃다의 모습을 보고 저희 가족들이 천주교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하나 둘씩 세례를 받아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 신자가 되었답니다.”라고 말했다.

 마르티노 씨는 세례받은 지 1년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벨라뎃다 씨는 “그날 레지오 단원 교육이 있었는데 제가 빠지게 되자 소식을 들은 100여 명의 단원들이 교육을 마치자마자 병원에 와서 기도해 주었어요. 그리고 수술 후 한 달 정도 입원해 있는 동안 쁘레시디움 단원들과 병원에서 근무하던 본당 신자들, 그 밖에 많은 신자들이 찾아와 보살펴주었답니다. 모두 한 마음으로 진심어린 기도를 해 준 덕분에 마르티노 씨가 이렇게 완치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 사랑을 차츰 갚아 나가야지요.”라고 말했다.

퇴원을 하고 약 7개월이 지난 이듬해 봄, 마르티노·벨라뎃다 부부는 함께 마라톤에 참가했다. “벚꽃을 보며 사람들 틈에서 살아서 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제부터는 주님께서 주신 삶이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이후 마르티노 씨는 등산을 물론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에 다녀올 정도로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르티노 씨가 갑자기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한 집안의 가장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을 그만 둔다는 사실에 화가 날 법도 한데 벨라뎃다 씨는 아무 말도 없이 그의 결정에 따랐다. 그렇게 부부는 대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2010년에 마르티노 씨의 고향인 이곳 지례로 귀촌했다.

벨라뎃다 씨는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앞으로의 인생은 마르티노 씨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해 일주일에 서너 번은 대구에 갔어요. 그러나 도시와는 달리 작은 규모로 가족적인 성당 분위기에 차츰 적응하게 되었지요. 신자들 가운데 70-80대 어르신들이 많으셔서 미사전례는 물론 레지오, 주일학교 교리교사, 주일학교 교장, 청소년위원장 등 능력은 부족한데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역할을 맡고 있답니다.” 라며 웃었다. 마르티노 씨는 “저는 고향이 좋아서 돌아왔지만 벨라뎃다는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도 우리가 이곳에 정착하는데 ‘신앙’이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주일미사는 물론 레지오 회합, 평일 미사 참례, 전례봉사, 본당 홍보담당, 사목회 총무 등으로 대구에서 지낼 때보다 더 자주 성당에 오게 됩니다. 성당에서 집까지 차로 25분 쯤 걸리는 거리로 그리 가까운 편은 아니지만 벨라뎃다와 함께 오가는 그 시간이 항상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신앙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벨라뎃다 씨는 “삶이 신앙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귀촌해서 들어왔더니 한창 일 할 나이에 왜 매일 성당에만 있냐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제가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많이 불안했을 거예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아도 매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부족하지는 않기에 주님의 자녀로 열심히 살아가면 모두 마련해주시겠지요. 앞으로도 모두 주님 뜻대로 이루어주시리라 저는 믿어요. 다만 처음 세례 받던 날, 우리 부부가 함께 봉헌하던 날의 감사함을 자꾸 잊는 것 같아서 늘 처음의 그 마음을 간직하고자 노력해야겠어요.”라고 했다.

마르티노 씨는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새벽기도를 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성경공부를 하는 벨라뎃다를 보며 신앙적으로 많이 부족한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일 잘 한 일이 세 가지 있는데요, 첫째는 벨라뎃다를 만난 것, 둘째는 세례를 받은 것, 셋째는 금연입니다. 앞으로 제 인생의 소중한 인연인 벨라뎃다와 함께 매일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조금은 부족해도 욕심내지 않고 주님을 향한 믿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 마르티노·벨라뎃다 부부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