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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가난한 사람들이 아프면, 예수님도 아프다……


글 이관홍(바오로) 신부|가톨릭근로자회관 부관장

 대승불교의 경전 중 하나인 유마경에는 “중생이 아프니, 부처가 아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비심’을 강조하는 불교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복음서에 드러나는 예수님의 삶 역시도 부처님의 삶처럼 아픈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삶이셨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분명 아파하는 이들, 가난한 이들이 아파하면 예수님께서도 아파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자주 듭니다.

이주사목을 하며 이주민들과 함께 하다보면 이주민들의 생로병사를 함께 하게 됩니다. 그래서 몸이 아픈 이주민들이 근로자회관을 찾고 대안 성당을 찾아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매주 가톨릭근로자회관 의료실과 치과에는 수십 명의 이주민 환자들이 치료를 받습니다. 감기 몸살이나 충치처럼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는 경우에는 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치료를 받지만 암이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종합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도움을 청합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멀리서 가톨릭근로자회관을 찾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지만 큰 병을 안고 찾아와 도움을 청할 때면 더 가슴이 아파 눈물이 흐를 때도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심각한 병에 걸린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을 수 없는 미등록 체류자(불법 체류자)들입니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할 수도 없는, 몸이 아픈 이주민들이 다른 곳에 도움을 청하다가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바로 가톨릭근로자회관이고, 대안성당입니다. 물론 천주교 신자 이주민들도 있지만, 신자가 아닌 이주민들도 많이 있습니다.

      

다들 많은 사연을 가지고 아픈 몸을 이끌고 찾아옵니다. 그래서 그 사연들에 귀를 기울이려고 합니다. 단순히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병도 치유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아울러 도움을 청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누구를 우선적으로 도와줘야 할지를 식별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이주민들이 대부분이고,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보면 가족 중에도 심각하게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체류 기간을 넘겨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들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겪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주민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 된다고 가수의 꿈을 안고 한국에 입국을 했지만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되었고, 성매매까지 강요당하다 도망친 경우도 있고, 산업재해를 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난 이주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불법 체류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참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모든 이주민들, 특히 미등록 노동자들은 한국에서의 삶 자체가 불안정하고 불안합니다. 그리고 몸이 아픈 경우에는 가족들의 생계에 대한 걱정과 경제적 문제로 심적인 부담을 더 크게 안고 살아갑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마음의 병이 육체의 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육체의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이주사목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것도 이주사목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국에서 겪은 마음의 상처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병문안을 가고 함께 기도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줍니다. 아울러 그들이 그리워하는 고국의 음식을 구해주고 함께 먹으면서 힘을 내서 병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가장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날 때는 더 이상 가망이 없어서 고국으로 돌려보낼 때와 한국에서 병마에 시달리다 외롭게 세상을 떠날 때입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멀리 타국까지 왔지만 병만 얻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심정은, 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가족들의 희망을 한 몸에 짊어지고 있는 가장이 타국에서 세상을 떠난다면 그 가족들의 삶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때로는 장례비용을 마련하지 못해서 장기간 동안 병원 냉동고에 시신을 보관할 때도 있고, 시신만이라도 보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가족들이 눈물로 호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고에 시달리는 모든 이주민들을 도와줄 수는 없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착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당해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준 것처럼, 병든 라자로가 부자의 집 문 앞에서 무관심 속에서 외롭고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경제적인 문제와 법적인 문제로 벽에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속상해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삭막한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기에 이주민들의 아픔에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얻곤 합니다.

특히 우리 대구대교구와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병원들에 염치불구하고 도움을 청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의료 보험이 없는 중환자를 도와 준다는 것이 병원에 큰 부담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민들을 위해서 큰 배려를 해주시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대구 파티마병원, 포항 성모병원의 병원장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결같이 매주 근로자회관에서 이주민들을 위해서 봉사해주시는 경북대학교 의대 동아리 한빛, 동산 가톨릭 봉사단, 대구 외국인 노동자 치과 진료소 의사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