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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문화와 영성 (21)
풍랑을 가라앉히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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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창현(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가다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복음서가 전하는 이 이야기를 위대한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1633년에 그린 〈갈릴래아 호수 풍랑 속의 그리스도〉에서 그 의미를 탁월하게 해석한다. 우리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본 후 복음서의 “풍랑 이야기”의 신학적 의미를 찾아보려 한다.

 

■ 렘브란트의 해석

● 렘브란트는 갈릴래아 호수의 풍랑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를 집어삼키듯 덮치는 긴장된 순간의 장면을 특유의 빛과 어둠을 대비시키는 명암법으로 표현한다. 배에 부딪치는 그림 왼쪽 부분의 흰 파도와 오른쪽 부분의 어둠이 대조를 이룬다. 그림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돛대의 끝과 호수의 파도로 말미암아 45도 가량 들려 있는 배의 앞머리, 그리고 그림 오른쪽의 배의 뒷머리는 전체가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고 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림 왼쪽, 곧 배의 앞부분에 돛대를 중심으로 다섯 인물이 있고, 그림 오른쪽, 곧 배의 뒷부분에 예수님과 함께 여섯 인물이 있으며, 이 두 부분 사이에 두 인물이 있다. 그래서 그림의 배에는 예수님을 포함하여 전체 열네 명이 표현되어 있다. 배에 탄 이들은 이 위급한 순간에 각자 어떤 행동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가?

 

● 배의 앞머리에 엄청난 파도가 들이치고 있다. 배 안으로 물이 덮쳐온다. 렘브란트는 복음서에서 표현된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마르 4,37)의 순간을 묘사한다. 돛줄이 끊어지기도 하고 돛이 찢어져 있기도 하다. 돛대 주변의 다섯 사람은 이 거친 풍랑에서 배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그림의 가장 왼쪽에 있는 이는 돛줄을 붙들고 돛을 내리려 한다. 그리고 돛대 주변의 사람들은 돛을 붙잡고, 기울어지는 돛대를 지탱하려 한다. 다른 한 사람은 오른손으로 돛줄을 잡고 왼손으로는 자신을 덮치는 물을 막고 있다. 이러한 행동들이 강력한 자연의 힘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최선을 다해 위기에 처한 배를 구하려 노력한다. 그림에서 돛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옷은 밝은 색들로 표현된다.

 

● 렘브란트는 그림의 중앙에 두 인물을 배치한다. 한 사람은 바닥에 앉아 배 안에 가득 찬 물을 바깥으로 퍼내려 한다. 그리고 푸른색의 옷을 입은 다른 한 사람은 오른손으로 돛줄을 잡고 왼손으로는 바람에 날아 갈까봐 자신의 모자를 붙잡고 있다. 그는 기울어진 배에서 돛줄에 자신의 몸을 의지하고 있으며, 배 전체가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한갓 자신의 모자를 지키려 한다. 비평가들은 이 인물을 렘브란트 자신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는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나의 모습이 바로 당신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 긴박한 상황을 묘사하는 그림의 왼쪽 부분과는 달리 오른쪽, 곧 배의 뒷부분은 차분한 분위기이다. 인물들의 옷 색깔은 어둡다. 예수님 주변에 여섯 인물이 있다. 렘브란트는 예수님에 대한 이 인물들의 각기 다른 반응을 제시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마르 4,38)라고 표현된 순간을 렘브란트가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두 제자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는 듯하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마르 4,38) 한 제자는 예수님을 깨우려고 손을 내밀고 있다. 예수님은 오른손을 당신 가슴에 두시고 매우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분은 당신을 깨우려던 두 제자를 바라보고 계신다. 다른 두 제자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기도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공포에 질린 시선을 호수의 파도 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 중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빨간 옷을 입고 있는 한 인물은 심한 배 멀미로 구토를 하고 있다. 그림의 맨 오른쪽에 있는 인물은 배의 키를 잡고 있다. 그는 키를 잡고 있기는 하지만 배의 방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배가 위험에 처한 순간에도 예수님 가까이에 있는 그는 두려움이 없는 모습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 중에서 과연 우리는 누구와 동일시될 수 있을까?

 

■ 풍랑 이야기의 신학적 의미

●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아니라 인간과 창조 세계 사이의 상호 관련성 안에서 표현된다. 곧 구원은 창조에 대한 대체가 아니라 “창조 세계를 다시 새롭게 하기”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복음서의 풍랑 이야기는 하나의 “그리스도론적 생태 담론”이다. 예수님이 갈릴래아 호수의 풍랑을 가라앉히신 이야기는 자연에 대한 통제가 하느님의 질서에 속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 이야기는 호수의 풍랑을 통해 자연과 인간 사이의 적대적 갈등 관계를 묘사한다. 혼돈 세력의 파괴적인 힘은 살아있는 피조물에게 고통을 주며 자연 세계 안에서 여전히 활동적이다. 이 파괴적 힘은 하느님에 의해 마침내 평정될 것이다. 하느님은 혼돈의 세계에 평화를 가져온다. 그런데 하느님은 자연의 파괴적 폭력에 대하여 당신의 파괴적 폭력으로 맞서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은 무질서를 평정하고 평화롭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창조를 다시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풍랑 이야기는 장차 완성될 새로운 창조 세계를 미리 보여주고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창조 세계 안에서 혼돈의 힘을 평정하시는 분이시다.

 

● 예수님의 풍랑 이야기는 오늘날 현대 문명의 실상을 폭로한다. 현대 세계의 거대한 과학 기술적 계획은 자연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시도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전능에 속한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인간은 자신의 의도대로 자연을 복종시키고 창조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기술에 의한 세계의 재-창조로써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현대의 거대 담론이 생겨났다. 그러나 자연의 힘에 대한 통제는 본질적으로 신적인 것이지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는 오히려 인간 자신과 창조 세계에 대한 엄청난 재앙이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 자연에 대한 통제에 있어 인간은 하느님에게 의존적이다. 인간은 단지 피조물로서 그것에 참여한다. 인간은 자신을 하느님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가진다. 전능한 인간이 세상을 마음대로 다시 창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찬탈이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 권력에의 의지, 하느님의 참된 창조성에 대한 반항은 결국 질서가 아닌 혼돈을 낳는다. 따라서 이러한 혼돈을 제한하고 창조의 조화를 증진하여 자연의 힘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창조 세계의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피조성을 인식하는 것이 요구된다.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 예루살렘 성서·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