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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가실성당 이기성(요셉) 전임 총회장
대(代)를 이어 신앙의 삶을 살다


취재|김명숙(사비나) 편집장

 

9월 순교자 성월이 오면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이번 달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으로 대(代)를 이어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가실성당(주임 : 서강일 아우구스티노 신부)의 이기성(요셉) 전임 총회장을 만나 그 삶과 신앙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올해 본당설립 121주년을 맞은 아름답고 유서깊은 가실성당. 성당 마당에 들어서니 진한 분홍빛의 배롱나무 꽃(백일홍)이 활짝 피어 눈길을 끌었다. 이른 아침에 만나 뵌 이기성 전 총회장은 “이 배롱나무들은 본당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나무들”이라고 설명하며 “우리 가실본당에는 제 나이보다 많은 나무들이 많다.”고 했다. 한여름 무더위가 절정에 다다른 7월의 마지막 주간 수요일,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강하게 내리쬐는 성당의 마당을 벗어나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증조부 때부터 신자로 살아왔다는 이 전 총회장은 “신동에 사시던 증조부님께서 병인박해 무렵 삶의 터전을 왜관으로 옮겨 오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저와 제 자손에 이르기까지 신앙을 지키며 성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도록 이끄셨다.”고 회고했다.

젊은 시절에는 왜관성당, 성주성당에서도 신자생활을 하며 성주성당에서 레지오활동도 한 적이 있다는 그는 “광주에서 군 복무를 할 때도 공소가 군부대 가까이 있어서 주일을 잘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미사에 참례하던 습관이 몸에 밴 덕분에 신앙과 삶을 따로 생각해보질 않았다는 이 전 총회장은 4대종손으로, 지금도 “1년에 12차례의 제사를 모실 때면 온가족이 한 자리에 둘러 앉아 함께 연도를 바치고 저녁기도도 바친다.”고 했다. 그는 “아마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 손을 잡고 성당에 다니면서 부모님을 따라 기도를 드리던 습관이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아침, 저녁기도는 물론 삼종기도까지 바치며 살도록 도운 것 같다.”고 했다.

본당 총회장으로 10년 넘게 활동한 이 전 총회장은 옛일을 떠올렸다. “1983년 송만협(요셉) 신부님께서 사목하시던 때에 가실본당은 본당 전교회장(그 당시에는 총회장 대신 전교회장으로 불렀음)과 4명의 구역회장이 활동하면서 신부님을 도와 공소를 관리했는데, 전교회장의 선종으로 회장직이 공석이 되자 구역회장인 제가 전교회장으로 선출됐다.”고 말했다. 그는 순명하는 마음으로 본당의 중책을 맡고부터 더욱 본당활동에 매진했다. 그리고 1984년 가실본당으로서는 처음으로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체제를 도입하여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분과장과 제단체위원을 영입하는 등 주임신부를 도와 사목협의회와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체제로 본당활성화를 위해 힘썼다. 또 제2차 교구 시노드를 앞두고는 본당의 시노드 위원, 사목부의장으로 활동하면서 본당 내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요셉회를 창립하여 명예 총무를 맡는 등 교회 일에 헌신했다.

본당 일뿐만 아니라 이기성 전 총회장은 왜관에 있는 캠프 캐럴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가톨릭신우회 활동도 했다. “미군부대 안에 가톨릭신우회가 창립된 것은 1970년 무렵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회원 수가 많게는 70여 명에 이르도록 신우회가 활성화 됐었다.”며 “저 역시 창립 때부터 1998년 퇴직할 때까지 신우회원으로 활동하며 회장직도 맡아 회원들과 즐겁게 지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성당에서 살다시피 한 삶이었다고 기억하는 이 전 총회장은 “특별히 잘 한 것도 없고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기쁘게 했을 뿐 자랑할 일은 하나도 없다.”며 자신을 낮췄다.

슬하에 2남 1녀를 둔 이기성 전 총회장은 아내(박춘규 크리스티나)와 둘이서 오붓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아내와 함께 아침기도, 저녁기도, 삼종기도를 바치며 미사에 참례하고 또 본당의 요셉회(선종을 잘 맞이하기 위한 모임) 총무로 활동하며 주일에는 인근의 어르신들을 태워 미사에 참례하는 등 10년째 차량봉사도 하고 있다. ‘봉사’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주일미사 참례하러 가는 길에 같이 타고 가는데 봉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처음엔 네 분이셨는데 두 분은 떠나시고 이젠 두 분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평생 성당에서 사는 것이 좋았고 성당의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좋아서 지금까지 기쁘게 하며 살아왔고 또 살고 있으니 후회는 없다.”고 들려주는 이 전 총회장은 “다만 하느님 앞에 나아가 ‘잘 살다 왔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고 했다.

박해를 피해 삶의 터전까지 옮겨 가며 신앙을 지킨 증조부 덕분에 대대손손 대를 이어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이 전 총회장과 그의 가족들. 그는 자녀들이 성가정을 이루고 주일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한 것 같아 감사하다고 했다. 끝으로 이기성 전 총회장은 “한평생 아무 미련없이 하느님 안에서 기쁘게 살아온 삶이었다.”고 담담히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어느 날, 하느님 앞에 가야 할 그때에 우리는 어떤 모습, 어떤 마음으로 떠날 채비를 해야 할까? 참으로 아무 미련 없이 담담히,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이 세상 순례의 길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매순간순간 기도 안에서 비우고 갈무리하며 살아가야겠다.

- 취재도움 : 가실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