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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말씀살이 - 소공동체를 위하여
이 달의 말씀살이
- 소공동체를 위하여


글 교구 성서사도직과 조동혁, 배영인, 류재민, 신대현 신부

· 소공동체 복음나누기 자료제공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053) 250-3082 cafe. daum.net/biap

 

 

* 매주 하는 복음 나누기 7단계

(1) 주님을 초대한다.

“기도로 이 자리에 예수님을 초대해 주십시오.”

 

(2) 말씀을 듣는다.

“ ― 복음 ― 장을 펴 주십시오. 어느 분이 ― 절부터 ― 절까지 읽어 주십시오.”

(다 읽고 난 후 잠시 침묵한다.) “다른 분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3) 복음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각자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짧은 구절을 선택하여 큰 소리로, 기도하듯이 세 번씩 읽어 주십시오. 읽는 사이에는 잠시 침묵을 지켜 주십시오.” “어느 분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4) 침묵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3분 동안 침묵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도록 합시다.”

 

(5) 마음 안에 들려온 말씀을 나눈다.

“이제 각자 주님께로부터 들려온 말씀을 함께 나눕시다. 왜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와 닿았는지,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6) 모임에서 해야 할 활동에 대하여 토의한다.

“지난 번 모임에서 결정했던 사항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그 결과와 개선해야 할 사항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이번에는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 주위에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7) 자발적으로 함께 기도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자유롭게 기도합시다.”

 

 

 

9월 4일 연중 제23주일 : 루카 14,25-33.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4장 25-33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 많은 군중에게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26-27절)

- ‘탑’의 비유는 무엇입니까?(28-30절)

-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움에서 맞설 수 없다면 그는 어떻게 합니까?(31-32절)

- 두 비유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3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 우리 각자가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23주일 복음묵상 조동혁(아우구스티노)|장량성당 보좌신부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영원히 머무를 듯이, 그러나 언제나 떠날 것처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이신 브뤼기에르 주교님께서 교황청에 조선 선교를 자원하며 남기신 말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였으며 태국 방콕의 보좌주교였던 그는, 자신의 교구인 조선 땅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와 같은 말을 남긴 것입니다. “언제나 떠날 채비를 하고 영원히 머무를 듯이 기다리겠습니다.”

주교님의 생애 자체가 워낙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조선 땅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으로 가득 찬 여정이야말로 예수님을 닮았기에, 저로서는 더욱 남다른 느낌으로 이 말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는 곳마다 최선의 사랑을 베풀면서도 그 이면으로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떠날 채비를 하고 사는 삶이야말로 오늘 복음의 말씀을 기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라고 시작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고자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이었지만 군중은 그저 무언가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그분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군중을 향해 주님께서는 뒤돌아서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유다인들에게 ‘미워하다’라는 말은 ‘미루다’, ‘두 번째로 두다’, ‘덜 사랑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주님의 말씀은 “하느님을 가족이나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러하신 것처럼,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목숨을 바치는 심정으로 하느님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탑 구축과 전쟁 수행의 비유를 덧붙이십니다.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과 자신을 버리는 것뿐 아니라 소유마저 다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탑을 세우려면 경제력을 갖추어야 하고 전쟁을 치르려면 군사력을 갖추어야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데는 아무 것도 갖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그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지 우리의 소유나 집착 따위가 아닌 것입니다. 사실 자신을 버리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지구의 역사가 45억 년이라면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45억 년을 기다리신 끝에 지금의 ‘나와 너’라는 구체적인 개인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직접 사람이 되어 오시기까지 하셨지요. 그토록 소중한 사람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당신 목숨마저 아끼지 않고 내어 놓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인 우리에게도 같은 요구를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마음속에 버리지 못할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면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비우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마지막까지 완전히 비우지는 못할지라도 끝끝내 포기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처럼, 아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부디 우리가 주님 앞에서 다시 만나는 날까지 “영원히 머무를 듯이, 그러나 언제나 떠날 것처럼” 사랑하기를. 먼 훗날 그 노력으로 함께 타올랐던 사람들 중 하나라도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9월 11일 연중 제24주일 : 루카 15,1-10.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5장 1-10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세리들과 죄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1절)

- 이에 대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2절)

-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마리를 잃으면 어떻게 합니까?(4절)

-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어떻게 합니까?(5-6절)

-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는 부인이 한 닢을 잃어 버렸을 때 어떻게 합니까?(8절)

- 잃었던 은전을 찾은 여인은 어떻게 합니까?(9절)

- 하느님의 천사들은 무엇 때문에 기뻐합니까?(7절, 1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우리는 그 사랑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518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24주일 복음묵상 배영인(바오로)|성정하상성당 보좌신부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갑니다. 그것을 어디에 두었는지부터, 왜 있어야 하는 자리에 없는지 온 집안을 뒤적거리며 괜한 푸념만 늘어 놓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 물건이 필요할 때, 어디엔가 사용할 때 그 물건이 없어졌음을, 잃어버렸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애타게 찾을 필요도 없겠지요. 그리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그것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만큼 기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말씀에 나오는 양을 되찾은 사람과 은전 한 닢을 되찾은 부인은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잃었던 것을 다시 찾았으므로 함께 기뻐해 줄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이었다면,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면 어떨까요? 그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자기에게 돌아오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먼발치에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잘못들, 그 아들이 했던 모든 행위들은 뒤로한 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들에 대한 가엾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마자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으며 가장 성대한 잔치를 열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이 세상의 자녀들을 바라보는 하느님 아버지의 시선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그분의 시선이 가장 먼저 미치는 곳은 자신에게서 멀어진 이들, 죄인들에게 향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금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비에 대한 체험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자비, 곧 가엾은 마음은 자신에게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려는 이들에게 향합니다. 우리의 자비는 이러한 하느님의 자비와 같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시선도 그분께로부터 멀어진 이들, 잃어버린 이들을 향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엾은 마음으로 함께 아파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섬기는 이들도 나약함으로 갈아입고 무지와 잘못에 빠진 이들과 함께 아파하기를 바라셨으니 주님을 섬기는 이들을 만나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보살핌과 사랑과 용서를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소서.”

 

 

 

9월 18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 루카 9,23-26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9장 23-26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내 뒤를 따라오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23절)

-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과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의 목숨은 어떻게 됩니까?(24절)

- 25절을 함께 낭독합시다.

- 사람의 아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26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날마다 지고 가야 하는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지 나누어 보고 순교 성월을 맞아 성인전기를 읽고 성인들의 삶을 묵상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83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복음묵상 류재민(요한)|형곡성당 보좌신부

“하느님을 선택하는 삶”

요즈음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미니멀 라이프’는 단순하게 설명하면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가자.’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이것저것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많이 가질 것을, 더 좋은 것을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한 부의 과시로 사람을 판단하게끔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은 채우면 채울수록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버리고 살 수는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나머지 필요치 않은 것을 정리하고 단순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요즘의 사람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바친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103위 순교 성인들과 124위 순교 복자들, 그리고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과 피를 흘리지 않았더라도 신앙을 지키다 돌아가신 모든 신앙 선조들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의 삶이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삶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졌던 모든 재산도, 지위도, 심지어 가족도 버려두고 오로지 꼭 필요한 한 가지, 하느님께 대한 신앙만을 붙들고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며 하나뿐인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 선조들의 삶은 200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를 챙겨야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복음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00년 전 순교자들이 신앙을 살아왔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과연 지금 똑같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미사에 참례할 수 있고,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으며,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실 수 있는 오늘날의 시대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많은 부분이 편리한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버리거나 자기 목숨을 잃는’,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진 신앙의 소중함을 잊고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맞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를 사랑하셨고 오늘도 성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기 위해 다가오십니다. 이같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던 우리 신앙 선조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자신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로 신앙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2)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데 진정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 그리고 복음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미니멀 라이프를 외치는 가운데 우리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것이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순교자들의 삶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이번 한 주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내게 가장 최우선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그 자리에 하느님을 모실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9월 25일 연중 제26주일 : 루카 16,19-31.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6장 19-31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부자의 모습은 어떠합니까?(19절)

- 부자의 집 대문 앞의 라자로의 모습은 어떠합니까?(20-21절)

- 가난한 이와 부자는 죽어서 어디에 있습니까?(22-23절)

- 아브라함 곁에 있는 라자로를 본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무슨 말을 합니까?(24절)

-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25-26절)

- 아브라함에게 부자는 무엇을 청합니까?(27-28절)

-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고 하자 부자는 어떻게 대답합니까?(30절)

- 31절을 함께 낭독합시다.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이나 어려운 일을 볼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어디인지 찾아보고 기도와 선행을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5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26주일 복음묵상 신대현(요셉)|동천성당 보좌신부

8월 8일 월요일! 많은 교우분들의 도움으로 여름행사 중 수고한 주일학교 교리교사 선생님들과 함께 교사 연수로 대마도에 가게 되었습니다. 잘 모르는 부분도 많고 처음 가는 이즈하라 지역이었기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이지 소중한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준비부터 탈도 많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과정 중에 만나게 된 분이 민박집 사장님과 동생 분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라자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요, 저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여기서 만난 이분들과 묘하게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운영하지 않는 민박집에 일행을 소개시켜주시면서 안내와 맛난 음식까지…. ‘이렇게까지 잘해 주셔도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저녁에 아가페 시간이 되어 마을의 몇 분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분들의 순박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혹 여행 중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의심했던 제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사장님의 한 마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어린 친구들이 오면 예전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때부터는 이 친구들한테 형이 됩니다. 지난 시간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가 받았던 것들을 생각하며 그냥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해주려 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내일이면 떠날, 어쩌면 다시는 못 볼 이 젊은 친구들을 위해 수고해 주시는 그분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부자는 특별히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아브라함과 하느님 곁에 있지 못하는가? 해줄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사랑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그것을 하지 않는 것….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외면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부자를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하지는 않았을까? 대마도에서 만난 그분들이 어떤 계산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 베풀 수 있는 사랑을 베풀었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어쩌면 참 단순한 것을 원하신다고 말입니다.

가난한 이를 부자로 만들지 않아도, 아픈 이가 완전히 건강해지지 않더라도 하느님께서는 할 수 있는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