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만남과 이별


글 이관홍(바오로)|신부, 가톨릭근로자회관 부관장

우리의 삶은 수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이 모자이크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모든 만남과 이별이 그러하듯이 때로는 아픔이, 때로는 기쁨이 함께 합니다. 이주 사목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만났고, 또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매주일 11시 근로자회관에서 봉헌되는 이주민들을 위한 영어 미사에는 항상 작은 이벤트가 있습니다. 영성체 후 공지 사항을 전달하고 난 뒤 생일을 맞이한 사람들, 새롭게 한국 땅을 밟은 사람들, 한국 땅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짧고 소박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생일은 물론 축하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되지만 새롭게 한국 땅을 밟은 것, 그리고 한국 땅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축하한다는 것은 조금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동남아 사람들에게 한국 땅을 밟는다는 것은, 특히 한국에 일을 하러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 땅을 밟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 가지 많은 서류들을 필요로 하고, 또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나이나 건강 등의 결격 사유로 인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어도 입국 자체가 거절되는 경우도 많고 소위 말하는 브로커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으로 한국행이 좌절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 난관을 뚫고 한국에 입국한 것 자체가, 그리고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되는 한국 땅을 밟은 것 자체가 축하할 일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20년씩 일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워했던 가족과의 재결합이기에 당연히 축하받아야 할 일입니다.

한국 땅을 새롭게 밟은 이들,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지만 두려움과 걱정도 함께 드리워져 있음을 자주 느낍니다.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애절한 마음, 연민의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도 합니다. ‘앞으로 한국 땅에서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을까?’, ‘얼마나 많은 차별을 당하고, 무시를 당할까?’,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면 그리워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기에 행복하겠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그들을 힘겹게 합니다. 사실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 한국에서 많은 돈을 벌어서 귀국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에 입국할 때 비용이 큰 부담이기에 그 빚을 갚아야 하고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부양해야 할 고국의 가족들이 많기에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불법 체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고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SNS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됩니다. 택시 기사가 되거나 티셔츠 등을 만드는 작은 가내 수공업 공장이나 식당, 노점상 등을 운영하며 고국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다시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 또 다시 이주노동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종종 뜻하지 않은, 예상하지 못한 이별도 있습니다. 미등록 체류자(불법체류자) 단속에 적발되거나 범죄에 연류되어 강제 추방을 당할 때입니다. 자신의 짐을 꾸릴 여유도 없이 외국인 보호소에서 생활하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친구들이나 근로자회관 직원들에게 자신의 짐을 고향으로 부쳐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가장 가슴 아픈 이별은 불치병을 얻어 한국에서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어서 고국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생존 확률이 지극히 낮을 때입니다. 한국에서 치료 할 수 없으면 고국에서도 치료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때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끊어주고 귀국을 재촉하기도 합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한국에서 병을 고치고 일도 하고 싶다고 하지만 더 이상 희망이 없을 때는 고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합니다. 그렇게 고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 안에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듣게 됩니다.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한국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귀국할 수 없다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저는 ‘나그네’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우리 교회도 ‘지상의 나그네’라고 불리우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로, 우리 본향인 천국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나그네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이주민들은 모두 이 나그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좋은 표상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나그네, 이 시대의 나그네들인 이주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우리 모두 삶의 여정에서 만남과 이별을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