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독자마당 1
김동한 가롤로 신부님을 기억하며


글 김무권(요셉)|성정하상성당, (주)현대건축사사무소 대표

어느 여름날, 김수환 추기경님이 대구 출장길에 형님인 김동한(가롤로) 신부님이 원장으로 계시던 대구요양원에 들르셨다. 마침 형님 신부님은 모금을 위해 출타 중이라 계시지 않으셨다. 형님 방에서 하룻밤을 묵으신 추기경님께서는 무더운 대구 날씨에 너무 힘이 드셨는지 형님을 위해 작은 에어컨을 달아드리고 가셨다. 며칠 후 돌아오신 김동한 신부님께서는 그간의 사정을 들으신 후 “감사하지만 추기경님께서 형을 위하는 마음에 생각이 짧으셨구나.”하시며 그 에어컨을 중증 결핵을 앓는 환자 방으로 옮겨달게 하셨다.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여름을 보내며 고(故) 김동한 신부님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생을 가난한 이, 병든 이들을 위해 헌신하신 신부님은 사회복지라는 개념조차 부족했던 1970년대에 결핵환자들을 위한 대구요양원을 맡으신 것을 시작으로 ‘밀알회’를 조직하시는 등 오늘날 대구 가톨릭사회복지회의 초석을 다지신 분이다.

나와 신부님과의 인연은 신부님이 화원성당에 본당 신부로 부임하시면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나는 화원성당을 다니시던 모친을 뵈러 매 주일마다 그 곳을 방문했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신부님도 자주 뵙게 되었다. 신부님은 정말이지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로 상대가 누구인지 따지지 않고 모든 이에게 항상 친절하셨다. 결혼 전이었던 나에게도 당신이 먼저 중매를 하시겠다며 참 편하게 대해 주셨는데, 그 덕에 적지 않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신부님과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그 후 신부님은 당시 ‘춘광원’이었던 대구요양원으로 가셔서, 그 시절 가장 무서운 질병이었던 결핵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들의 재활을 돕는 일에 매진하셨다. 내 직업이 건축 설계 일이었기에 신부님을 따라 요양원 시설을 둘러보았는데, 당시 그곳의 환경은 위생적인 치료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생활도 힘들 정도로 매우 열악하였다. 환자 숙소라는 것이 고작 블록으로 담을 쌓고 그 위에 홑겹 슬레이트로 대충 지붕을 올린 게 전부였다. 요즘 같은 단열은 생각도 할 수 없어서 여름에는 찌는 듯이 덥고 겨울에는 지독하게 추웠다. 특히 겨울이면 추위를 막기 위해 바람이 들어올 만한 곳은 비닐로 전부 막아야 했고, 그 탓에 결핵환자들에게 필수적인 환기를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이에 신부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환자 숙소 도면을 그려 달라 하시고는 그것을 들고 예산을 마련하러 시청을 비롯하여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셨다.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은 물론 그것을 담당하고 지원하는 부서도 미흡했던 당시에 결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웠지만 신부님께서는 참으로 열정적으로 임하셨다. 그것은 아마 당신도 결핵을 앓아 오랫동안 마산 결핵요양원에 머물며 고생하신 경험이 있기에, 결핵환자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셨고 또 그들의 힘든 처지를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기셨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신부님은 지병인 당뇨병으로 고생하시면서도 밀알회 후원 모금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불러주지 않아도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 여러 나라를 찾아다니셨다.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자신의 몸을 돌볼지 않고 일하신 탓에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모금을 다니시다 현지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미사경본이 잘 안 보인다고 하셔서 내가 굵은 펜으로 크게 써드린 적이 있는데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크게 써달라고 하실 정도로 시력도 급격하게 나빠지셨다. 말년에는 당뇨합병증으로 걷지도 못하시고 거의 보지도 못하실 지경으로 몸이 기울었던 신부님은 1983년 결국 고대하셨던 대구요양원이 지어지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선종하셨다.

어느덧 33년이 지나서 신부님의 땀과 열정이 깃든 송현동 대구요양원 자리에 이제 성요셉성당과 원로 사제관인 요셉관이 새로 지어졌다. 항상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신부님의 삶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그곳에 그분의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졌으면 한다.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