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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글 이관홍(바오로) 신부|가톨릭근로자회관 부관장

      

12월이 되면 필리핀, 베트남 이주민들도 분주해집니다. 한국 신자들과 똑같이 각 공동체에서는 구유를 꾸밀 준비를 하고 아울러 성탄 파티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웁니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의 경우에는 성탄절을 위해서 적금을 넣을 정도로 성탄절이 연중 가장 큰 축제이기 때문에 10월부터 백화점이나 길거리, 그리고 집집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합니다. 고국에서처럼 한국에 있는 필리핀 이주민들은 자신들의 숙소에 일찌감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합니다. 베트남 공동체에서는 평소에도 제대 꽃장식을 화려하게 하고 성상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처럼 성탄을 앞두고는 모두가 구유를 꾸미는데 혈안이 됩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베트남 신자들은 구유를 만들 때 정말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짓는 것처럼 정성을 들인다고 합니다. 성탄을 준비하고 성탄 축제를 지내는 이주민들을 보면 한국 신자들보다 훨씬 더 정성을 들이고 성탄이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베트남, 필리핀 이주민들의 신심이 한국 신자들보다 더 깊거나, 가톨릭 국가와 비가톨릭 국가의 차이로만 볼 수만은 없습니다.

 

아주 쉽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예수님의 성탄을 기뻐하는 이유는 하늘에서 하느님과 함께 계시던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달리 표현해보다면,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이주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으로 이주하셔서 이주의 첫 순간(탄생)부터 이 땅의 이주민들이 겪는 ‘환대받지 못함’, ‘거부’라는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거부를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 11)라고 표현하고 있고, 루카 복음서에서는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라고 표현하면서 하늘에서 오신 이주민 예수님을 환대하지 않는 이 세상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헤로데의 학살을 피해서 이집트로 피난을 가서 살아갔던 성가정의 모습은 오늘날 난민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주민들은 분명 성탄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자신들처럼 환대받지 못했던 이주민 예수님과 자신들의 처지를 함께 생각해볼 것입니다. 그리고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라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면서 나그네살이를 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과 예수님의 삶이 많이 닮아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으로 이주하시면서 하늘나라의 새로운 문화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새로운 문화와 삶의 방식은 이주민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처럼 때로는 ‘거부’ 되기도 하고,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기도 하고, 우리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묻혀버리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지만, 특별히 이주민들에게 성탄은 그들의 나그네로서의 애환과 슬픔, 그리고 기쁨과 희망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주민들은 예수님의 성탄을 기뻐하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고, 위로를 받게 되고, 또 하느님의 보호하심에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분주하게 그리고 들뜬 마음으로 성탄을 준비하는 이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노라면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고 조금은 애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분명 성탄을 기뻐하면서 새롭게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이 땅으로 이주하셨다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여느 인간들과 다른 삶, 새로운 삶을 보여주신 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문화’를 보여주심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이주민이 되셨고, 새로운 문화와 다른 삶의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주민들을 환대하고, 그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환대하고, 하늘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연습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생을 이주민으로 살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수없이 많은 이주민들이 예수님과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탄을 맞이하면서 특별히 예수님께서도 이주민이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주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가지고, 그들을 조금 더 배려하고 이해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