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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교회는 야전병원


글 이관홍 바오로 신부 | 가톨릭근로자회관 부관장

지난 한 해가 끝날 무렵, 우리나라가 어수선했던 만큼이나 가톨릭근로자회관도 많이 어수선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회는 야전병원’ 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근로자회관은 정말 야전병원과 같았습니다. 아니 응급처치가 필요한 야전병원보다 더 심각한 중환자들이 많이 찾은 종합병원과 같았습니다. 그동안 몸이 아픈 이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던 의료기관들은 연말이라 예산도 부족하고 부정청탁방지법 때문에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병세가 심각한 이주민들은 저희가 아니면 도움을 받을 길이 없었기에, 상담실 직원들과 관장 신부님, 그리고 저는 동분서주하며 때로는 구걸(?) 아닌 구걸까지 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10년 넘게 가족과 떨어져 한국에서 일을 하던 필리핀 여성 노동자까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필리핀 대사관과 수없이 연락을 주고 받으며 시신을 고국의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주민이기 때문에, 이주민이 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 때문에 아프고 또 죽음까지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베트남에서 온 H씨는 2년 전 선원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선원으로 일하던 중 월급도 적고 일이 너무 힘들어 건설현장을 전전하며 일용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H씨는 한국으로 입국할 때, 다른 이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돈 2천만 원 정도의 빚을 내서 입국을 했습니다. 베트남 현지 물가로 보면 우리 돈으로 3억에 가까운 돈이라고 합니다. 그 빚을 갚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열심히 일하던 중, 12월 12일에 십이지장파열로 긴급 수술을 받았습니다. 미등록 체류자였던 H씨는 의료보험도 없고 700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감당하기는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베트남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월급도 가불하려고 했지만 큰 병원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H씨가 입원한 병원은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포항성모병원이었습니다. H씨가 걱정하던 병원비는 병원장 수녀님과 사회사업실 수녀님께서 가장 큰 부분을 지원해주셨고, 4대리구 이주사목 코이노니아와 저희 근로자회관에서 조금씩 부담해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지면으로나마 병원장 엘리사벳 수녀님과 사회사업실 베로니카 수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H씨를 12월 25일 베트남 공동체 성탄 행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괜찮냐고, 아프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수줍은 듯 웃으며 서툰 한국말로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H씨를 보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감사의 화살기도를 바쳤습니다.

두 달 전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왜관에서 일하고 있던 Y씨는 우리 한국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조금은 황당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한국에 온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아 겨울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Y씨는 보일러가 되지 않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기숙사에서 목욕을 하려고 가스레인지로 물을 끓이다가 그만 끓는 물을 엎지르는 바람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대구에는 캄보디아 공동체가 없어서 캄보디아 통역사가 있는 의정부교구 이주 사목국에 연락을 했고, 저희 근로자회관이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료보험이 있는 합법 체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화상 치료에는 워낙 비용이 많이 들어서 회사와 저희 근로자회관이 일정부분 부담하여 치료비를 지원하였습니다.

2014년 6월 한국으로 입국한 이집트 난민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살고 있던 세 살 아기 A는 어머니가 요리를 하다 한눈을 파는 사이에 뜨거운 기름을 뒤집어써 얼굴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A는 국적이 불분명하고, A의 아버지는 난민 신청 대상자에게 부여되는 G1비자(인도적 체류 허가)를 가지고 있기에 정식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겨우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A의 화상으로 지금은 아르바이트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A의 어머니와 누나, 네 식구가 모두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병원비도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 A의 아버지는 여러 차례 수술이 필요한 A를 데리고 자꾸만 병원에서 퇴원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근로자회관에서는 어떻게든 A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계속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 H씨, 캄보디아에서 온 Y씨, 이집트 난민 아기 A, 그리고 한국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필리핀 여성 노동자… .

그 밖에 가톨릭근로자 회관을 찾는 많은 이주민 환자들이 때로는 부담이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장 신부님과 직원들, 그리고 저는 그래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도와줄 수 있겠냐며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에게 병원비를 빌리고, 다른 외국인 상담소나 외국인 지원 기관들을 전전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구합니다. 우리에게 온 사람들을 어떻게 내칠 수 있냐고, 어떻게든 돕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필리핀, 베트남 공동체에서 누군가 아프다고 전화가 오면 많이 아픈지, 병원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부터 합니다. 여러 명의 이주민 환자들이 도움을 청하면 누가 더 상황이 절박한지, 누가 더 도움이 필요한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여건 때문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회관을 찾는 이주민들과 미사에 참례하는 이주민들에게 돈보다 소중한 것은 ‘건강’이라고,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일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새해에는 이주민들이 한국 땅에서 아프지 않았으면, 큰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일을 하다 다치지 않았으면 그리고 나그네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이주민들을 보호해주시기를 청하는 소박한 기도를 바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