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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순례』, 그 길 위에서
하느님, 당신 뜻대로 살도록 하소서 (6화)


글 김윤자 안젤라 | 남산성당

 

2016년 8월 29일 월요일 - 오전에는 바람 한 점 없이 아름다운 가을날이었는데 오후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오늘은 수원교구와 대전교구 성지 일부를 순례하려 한다. 다소 무리한 여정일 것 같은데 그럼에도 강행하기로 하고 새벽 6시에 길을 나서서 오늘의 첫 순례지인 수원교구 손골 성지로 향했다. 손골1) 성지에는 도리 신부님과 오매트르 신부님의 기념관이 있는데, 가는 도중에 신자 분을 만났다. 그 신자 분이 우리 일행에게 이른 아침부터 순례하느라 고생한다며 차라도 한 잔씩 하고 가라면서 어찌나 따뜻이 대해 주시던지 참으로 행복한 순례의 길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성지를 순례하다 보면 그렇게 길 위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는 순간들이 너무도 많아, 하루의 순례를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곤 한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은이.골배마실2)인데 성당문은 잠겨 있었고 기념관은 공사 중이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어머니와 이별을 하고 재회를 한 곳으로 이름난 성지이다. 함께한 헬레나 형님께서 울고 또 울고 울음을 참지 못하셔서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그대로 담을 수 있었던 참으로 편안한 성지였다. 성지를 떠나면서도 헬레나 형님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계속 우셨던 모습이 집에 와서도 눈에 선했다.

 우리는 다시 그 다음 순례지인 남양3) 성모성지로 향했다. 대한민국 천주교 신자라면 거의 모든 분들이 한번쯤은 가 보았을 어마어마하고 대단한 성지! 성지 전체에 누구라도 묵주기도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은 묵주기도의 길도 대단했다. 또 동굴성당이라고 하면 보통은 조그맣다고 느끼겠지만 남양 성모성지의 동굴성당은 생각보다 아주 컸다. 동굴성당에 들러 조용히 성체조배를 하고 개인 묵상도 한 뒤 넓은 성지를 한 바퀴 돌면서 소풍 온 사람들처럼 멋진 성지에서 세상의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한 마음이었다.

 남양 성모성지를 나와 다음 성지인 요당리4) 성지로 향했다. 책자와 입구에서는 아주 조그마한 성지로 여겼는데, 성지로 들어가는 길이 단지 묵주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단지 묵주 길을 묵주기도를 하면서 지나 갈 수 있도록 성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묵주 길을 지나 성지로 들어가서도 깜짝 놀랐다. 성지에 성당을 지을 수 있도록 기증하신 분의 이야기도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요동치게 하시는 하느님! 우리는 요당리 성지의 나무 그늘 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마음껏 기쁨과 행복을 누렸다.

그리고 다시 향한 곳은 미리내5) 성지. 이 성지 역시 대한민국 천주교 신자라면 거의 다 알고 있는 성지로, 돌아가신 정행만 신부님을 떠 올리게 한 성지이기도 했다. 미리내 성지는 두 번째로 들른 곳이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순례를 할 수 있었다.

다음 순례지로 대전교구 성거산6)으로 향하는데 그렇게 맑던 하늘이 갑자기 천둥과 번개로 앞을 분간할 수 없이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성지 순례를 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성지가 무명 순교자들의 성지였다. 어디서 어떻게 순교했는지, 이름조차 없이 순교하면서까지 하느님을 섬긴 무명 순교자들의 아픈 무덤들이 너무나 많은데 성거산 성지도 그 중 한 곳이다. 두 군데의 줄 무덤으로 이어진 성지였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한 곳을 다 순례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 더 가슴 아팠다. 그렇게 장대비를 맞으면서 줄 무덤 무명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와 묵상을 하다 보니 우리의 발은 완전 물에 젖어버렸다. 그럼에도 무명 순교자들을 마음으로 기리면서 순례하고 그곳을 떠나려는데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도시가 너무나 아름다워 참으로 묘한 대조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무 명 순교자들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남방재7)로 향했다. 참으로 어렵게 찾아갔는데 실망과 아쉬움이 크게 자리한 성지였다. 팻말도 없고 정확한 성지 소개도 없이 그냥 작은 막대에 작은 판자가 벌판 한가운데 있어 남방재 성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방재 성지를 순례하면서 성지가 너무나 대단해서 온 대한민국 신자들이 다 알 수 있는 그런 성지도 있지만 이렇게 알 듯 말 듯한 성지도 있으니 성지 개발을 위해 신자들이 힘을 더 많이 보태야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무튼 얼마나 빙빙 돌았던지! 그래도 성지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빙빙 도는 동안에 하느님께서 선물하신 듯 멋진 쌍무지개를 두 번이나 감상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남방재 성지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우리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공세리 성당8) 으로 향했다. 세상을 다 내려앉힐 듯한 장대비로 앞을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무사히 성당에 들렀는데 그때부터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말끔히 갰다. 대전교구에서 최초로 설립된 공세리 성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그런데 그 늦은 밤에 성당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헤맨 것은 다름 아닌 스탬프 때문이었다. 안나 언니가 어렵게 스탬프를 찾았을 때는 우리 모두 아주 대단한 일이나 한 듯이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했다. 하지만 늦은 밤이라 아름답기로 이름난 성당을 속속들이 보지 못하고 떠나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오기로 하고 오늘의 순례는 공세리 성당에서 마치기로 했다. 밤길이라 오는 도중에 길을 잠시 놓쳤는데 어디가 어딘지, 어느 다리 위를 무작정 달리는 내 모습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그래도 우리 일행은 즐거운 마음으로 웃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면서 하느님의 큰 사랑과 은총으로 하루의 순례를 마쳤다고 아주 크게 기뻐했고, 어디가 어딘지 모르면서도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밤길을 달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 하느님, 저희가 공세리 성당에서 스탬프 찾던 모습이 너무 재미있으셨지요.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 저희 순례 길을 앞에서 인도해 주시고 보살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은 밤길 운전이 유난히 힘이 들고 조금 피곤해서 푹 자렵니다.”

 

○ 12회차 : 손골→은이.골배마실→남양→요당리→미리내→성거산→남방재→공세리 성당

 

1) 수원교구 소속의 성지. p.98. 『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순례』 참조

2) 수원교구 소속의 성지. p.110

3) 수원교구 소속의 성지. p.90

4) 수원교구 소속의 성지. p.108

5) 수원교구 소속의 성지. p.96

6)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56

7)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48

8)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