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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
첫 부부


글 박경현 프란치스코 | 포항 오천고등학교 교장, 진량성당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을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가끔 탈선도 하고 방황도 할 수 있지만 강한 회복력을 가진 아이들의 특징은 부모님과의 관계가 원만하여 가정이 화목하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최상위권 성적으로 동료들과 학부모들의 부러움을 독차지했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이 학생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조금 늦은 시간에 등교하는 아이에게 이유를 묻자, 아침 등교시간에 용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밤새 부부싸움을 하던 부모님은 ‘네 아버지한테 달라 해라.’, ‘내가 왜 주냐, 네 엄마한테 달라 해라.’고 미루며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상이어서 늘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속상하다고 말하며 보이던 그 아이의 허한 눈빛! 부부의 불화로 인한 아픈 사례들이 너무 흔한 일이 되었고 그로 인해 아이들이 겪는 외로움은 평생의 상처가 된다. 1950년대 말 부적응 청소년을 지도하던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님은 청소년 문제의 원인은 가정에 있고 가정의 중심은 부부이기 때문에 부부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안하여 보급했는데 바로 ME(Marriage Encounter)이다. 나는 대구 ME발표 부부로 17년여 동안 활동하면서 성경의 내용을 부부문제와 연계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다.

빛, 하늘, 바다, 땅 등 웅장한 우주가 무대로 마련된다. 땅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게 하고, 낮과 밤을 구분하며 허공에는 해, 달, 별을 매달고 땅과 바다에는 새와 물고기 집짐승과 들짐승이 뛰놀게 한다. 인간의 머리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이 모든 무대를 꾸미는 목적은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마침내 주인공이 나타난다. 당신 사랑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먼지와 흙으로 빚어 입김을 불어넣어 사람을 지어낸 것이다. ‘당신을 닮았다.’는 말이 특별하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사람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도박에 가까운 사랑을 몸소 보여준다. 그리고 그에게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의 이름을 부르게 하여 그들을 다스리게 한다. 특권도 이만한 특권이 없다. 그런데 모든 것이 갖추어진 가장 완벽한 무대에 등장했지만 사람은 고독을 느낀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다. 하느님 앞에 인간으로서는 홀로 존재하면서 느낀 이 고독을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원고독(Original Solitude)’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깊은 고독의 경험은 일치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고 하느님과의 일치에 앞서 먼저 사람에 대한 일치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깊은 고독을 체험하게 한 후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다음 장면이 화룡점정이다. 그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보여 협력자까지 만들어 준다. 사람에게서 빼낸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 온 것이다. 깊은 고독에 빠졌던 그 사람은 드디어 남자가 되어 어떤 마음으로 노래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부르리라.”(창세 2,23) 이렇게 인류의 첫 부부가 탄생한 것이다.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창세 2,25)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전히 개방되어 있고 어떤 방어도 필요치 않을 만큼 가장 친밀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언어가 되고 마주잡은 손끝을 통해 전해오는 체온은 온몸의 생기를 불어 넣는다. 서로의 눈길을 마주하며 잠드는 시간조차 아쉽다. 걷던 길 또 걷고 했던 이야기 또 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넘치는 축복이고 행복이 된다. 마지막 톱니가 채워진 두 사람 앞에 펼쳐진 세상은 진정한 생명을 얻은 듯 보인다. 꽃들은 모두 미소를 짓기 시작하고 새들의 지저귐은 노래로 바뀌었고 나비들의 몸짓이 흥겨운 춤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슴에는 사랑이 충만했고 하느님에 대한 찬미의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이처럼 부부는 서로에게 완전히 소속되면서 혼인 전의 독립된 개체의 모습을 버리고 부부라는 제3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혼인하기 전에는 각각 하느님과 관계가 설정되어 있었지만 이제 부부로서 하느님과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부의 친밀함이 그대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유지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일체감을 느낄 때 하느님과의 관계도 충만한 은총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부가 완전한 결속을 보일 때에는 어떤 악마의 날카로운 발톱도 두 사람 사이에 비집고 들어올 틈을 용납하지 않는다. 뱀의 유혹 따위를 거들떠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에 따르면 남녀가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시기에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만들어져 행복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게 되면 페닐에틸아민이 만들어져 천연 각성제 역할을 해서 열정이 분출되며, 그 다음에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성적 충동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사랑에 빠지면 현실감이 사라지기도 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이 호감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몸에 어떤 병원균이 침입하면 자기 방어체제가 작동하여 신체가 대응하듯이 로맨스로 인한 감정의 비정상적인 불균형 상태에서도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되어 감정의 평정을 유지해 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열정적인 사랑이라 해도 자연적인 지속기간은 대략 30개월 정도이며 이 기간이 지나면 평상심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류의 첫 부부도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랑의 열정도 식어갔다. ‘익숙함’이 지루함을 만들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은 기대만큼 충족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은 남자가 잠든 사이에 여자를 만들었다. 그것은 남자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로 독립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첫 부부도 깊은 로맨스로 인해 감추어졌던 이기적인 기대가 고개를 들면서 서로의 가치관이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대화와 행동이 배우자 중심에서 어느 순간 자기중심으로 바뀌면서 두 사람은 권력다툼의 기간을 맞이하게 된다. 서로 자기를 중심으로 배우자를 변화시키려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립의 시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대화는 듣기를 통한 공감보다는 설득이나 토론으로 바뀐다. 이 시기에는 상대의 장점이 오히려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갈등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취한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일체감이 느슨해지면서 깊은 실망에 빠져든다. 마치 혼인하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간 듯 혼자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배우자가 곁에 있어도 외로움이 밀려오고 문법이 다른 두 사람의 대화는 한 치의 진전도 이루지 못한 채 체념으로 변해 버린다.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두 사람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고스란히 전가되기도 한다. 배우자를 통해 채우지 못한 공허함으로 인해 무언가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유혹에도 취약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변화도 지금보다 나을지 모른다는 감정의 막장에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뱀의 말이 달콤하게 들리기도 한다.

삶은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시작되고, 길을 보여 주기 위해 신은 가끔 사람들이 길을 잃게 한다. 탕자는 돌아오기 위해 떠나야 하고, 용서를 깨닫기 위해 인간은 죄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모든 기대와 희망이 물거품처럼 변해버린 이브에게 지금 부부의 문제보다 더 절박한 것이 없다. 그리고 배우자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아담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서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지금의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싶은 행동에 직접 나서고 싶은 것이다. 아담의 심정도 다르지 않다. 이미 제법의 기간 동안 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환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지쳐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 탓만은 아닌데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내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큰 장벽이라도 놓인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깊은 로맨스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봇물처럼 다가온다. 혹시라도 회복의 수단이 있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순간에 뱀은 더 집요하게 아내에게 접근하고 그녀의 마음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아담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청천벽력보다 더 두렵고 천 길 낭떠러지보다 더 감당할 수 없는 일임을 직감한다. ‘하느님과의 언약’과 ‘아내의 마음’이라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야속한 운명에 직면하고 만 것이다. 남자는 신뢰를 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 이 상황에서는 당연히 온 몸으로 아내를 만류하고 뱀과의 대화를 중지시키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내와의 관계를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할 것 같아 두려운 것이다. 두 사람이 관계를 이 지경으로 악화시킨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사랑’과 ‘신의’를 모두 지켜갈 수 없는 운명의 칼날에 서서 그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속마음으로는 납덩이같은 두려움이 짓누르고 있었지만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아내가 건넨 과일을 덥석 깨문다. 이렇듯 불편한 부부관계가 상상도 못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많은 어두움의 원인이 원만하지 못한 남녀관계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에서 성경에 무지한 내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