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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1년을 지내며(9)
- 2015년 6월 23일부터 2016년 6월 23일까지


글 김형호 미카엘 신부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선교사목

  

노동(?)하는 아이: 11월 22일

이곳은 어디를 봐도 아이들이 많다. 국민 평균 연령이 20세쯤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하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4~5세 정도 되는 아이가 동생을 업고 있는 모습,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아이가 가득 채운 물동이를 거뜬히 이고 가는 모습에 입이 쫙 벌어진다. 예닐곱 명이 성당 나무 장궤틀을 마당에서 안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았다. 6세 정도의 아이 두 명이 끙끙대며 몇 번을 쉬어가며 드는데 주변에 앉아 있는 어른들은 힐끗 보기만 할 뿐 도와주지 않는다. 순간 도와줄까, 지켜볼까, 고민하는 사이 장궤틀은 성당으로 무사히 옮겨졌다. 손수레에 짐을 싣고 가는 건 물론이고 빨래나 나무패기 등도 자주 볼 수 있다. 아이들이 가사를 돕는 것, 힘껏 일하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다. 어른에게도 꽤나 무거운 장궤틀을 어린 아이 두 명이 옮기는 걸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건 아직 내가 흔히 보지 못한 모습인 것이지, 노동착취는 아니잖아? 지금 내가 도와주면 이들이 살아가는 생활 질서를 흐트러뜨리게 되겠지.’ 그래서 도와주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들도 하지 않는데 내가 왜 도와줘?’라는 얄팍함이 있었다.

우리도 예전에는 아이들이 당연히 집안일을 돕고 어린 동생을 업으며 돌보았지만 지금은 동생이 없을 뿐더러 너무 소중히 키워서 이런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아마 지금 주변에 이런 아이가 있다면 부모는 아동학대로 고발당할지 모른다. 시내에 가면 소매치기하는 아이도 간혹 보이지만, 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양손에 생필품을 가득 들고 하루 종일 거리를 오가는 아이들이 많다. 물론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한다. 가난해서 초등학교만 다니는 아이들이 많지만…. 우리는 너무 잘 키우고자 초인적으로 살라하고 이곳은 너무 막 키우며 힘대로, 맘껏 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곳 아이들은 배부르게 먹지 못해도 그냥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노구의 연민십자가: 11월 30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내전으로 힘겨움을 겪고 있는 나라, 민족 간 종교 간 심한 갈등이 있는 나라를 우선적으로 방문하시는 분. 일정 중에 해당국 정부와 갈등을 빚을 수 있는 곳도 방문하시고 소수-약자의 아픔을 헤아리며 안아주며 도움을 주기에 적극적인 분.

그분께서 어제와 오늘, 이곳 중아공을 방문하셨다. 3년째 내전이 계속되는 나라, 그 중에 이

곳 사람들도 가지 않는 무슬림 밀집 대표지역인 모스크를 방문하고 지도자를 만나셨다. 저격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단체의 공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탄차도 타지 않고 웃으시며 강복을 주기에 바쁘신 분. 노구의 몸, 오랜 비행과 꽉 짜인 일정에도 환하게 웃고 품으시며 사랑과 평화를 심으시는 분. 어제와 오늘, 사제라는 이유로 가까이에서 미사를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다.

생각보다 걸음이 느리시다.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절룩거리시고 약간의 부축을 받으신다. 언론에 비치는 개혁의 강인함과 사랑과 평화를 역설하는 강건함은 세상 곳곳의 고통을 함께하며 짊어지는 거듭된 여정으로 노쇠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분이 전하는 사랑과 평화와 희망의 씨앗을 품으며 싹틔우고 살며 꽃피우고 싶어 한다. 그 몫은 그렇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회개하는 삶의 실천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 힘을 주시는 분을 가까이서 뵌 것은 큰 영광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황이 짊어지시는 십자가에 비하면 그나마 가끔씩 진다고 생각하는 나의 십자가는 나무젓가락도 아님을….

 

한여름의 대림: 12월 6일

앙상한 가지로 바람과 빛이 드나들며 낙엽들이 신바람 난 스산한 겨울, 길손들은 어묵과 커피의 유혹에 끌려 자연스레 포장마차와 카페로 발길을 옮긴다. 옷깃을 여며도 그저 신난 캐럴 메들리와 늙지 않는 산타 할아버지의 넉넉함이 정겨운, 지금까지 대림시기의 풍경은 분명 한겨울이었다. 그런데 한여름의 대림시기는 기억 속에, 경험 안에 없었던 생소한 풍경이다. 땀띠나 들썩이는 엉덩이 틈으로 신난 아이들의 캐럴이 찾아들고 상의를 벗어도 흐르는 땀 너머로 열대과일들이 영글며 춤추는 대림. 썰매도 루돌프도 화려한 조명도 푸짐한 보따리도 없지만 설렌다.

“경사롭다. 고요한 오늘 밤에 아기 예수 탄생하셨도다.” 그분은 한여름의 성탄을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 이곳에도 산타를 보낸다면 어떤 선물봇짐을 풀어낼까? 겨우내 성탄을 준비하며 맘껏 즐기는 유럽인들과 연말연시에 마냥 따라 즐기는 우리네 모습들 너머로 낯설지 않은 캐럴을 정성껏 부르는 이곳 아이들에게 한여름의 성탄은 어떤 채움일까? 어떤 행복일까? 올해는 까만 성탄 예수님을 뵈올 것 같다. 그분이 이곳엔 외적풍요보다 그저 기쁨을 주시는가 보다.

 

보얄리 삼위일체성당 설립과초대본당신부 부임: 12월 20일

2011년 대구대교구는 교구 100주년 기념 시노드의 후속 사업으로 도움 받던 교회에서 도움을 주는 교회로 거듭나기로 결정하고 새로운 선교지로 프랑스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하 중아공)을 결정하였다. 추후 대구대교구와 방기대교구(중앙아프리카공화국) 간의 협약(2012.5.7 방기대교구, 2012.5.18. 대구대교구)에 의해 대구대교구의 사제들이 중아공에 파견(2012년 9월 11일 남종우 신부와 배재근 신부, 2015년 6월 23일 김형호 신부)되었으며, 방기대교구는 2015년 10월 12일 보얄리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하여 초대본당신부로 남종우 신부를 발령했다. 2015년 12월 20일 방기대교구 대주교의 주례로 본당승격 및 초대본당신부의 취임식이 거행되었다. 보얄리 삼위일체성당(공소 포함)은 2012년에 맺어진 양교구간 협정이 지속되는 한 대구대교구에서 파견된 사제들이 맡게 된다. 이곳에서 대구대교구는 사회복지사업(사회복지법인 들꽃마을)을 시작하였으며 본당사목활동과 더불어 보편적 복지지원 활동을 한다.

한편 보얄리 삼위일체성당은 수도 방기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125km 떨어진 중아공 교역의 중심 역할(중아공-카메룬)을 하는 1번 국도변에 있으며, 유일하게 수도 방기에 전력을 공급하는 댐의 상류에 위치해 있다. 주요 생산 활동은 농업과 어업(강)이다. 본당 관할 구역 내에는 10여 개의 소규모 공동체(공소)가 있으며 향후 발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성탄: 12월 25일

정말 빛이 없어도 빛은 충분한 것인가? 화려한 조명이 없지만, 신나는 캐럴의 자동 멜로디도 없지만, 그저 어두운 대로의 빛으로 빈손 충만한 미소가 나눔의 전부지만, 드릴 선물이라고는 신나는 몸짓뿐이지만 즐길 시간은 충분한지 모르겠다. 긴 시간의 미사에도 지치지 않는 흥으로, 장례에서도 춤추며 노래하는 즐김으로 보잘것없는 것들을 충분히 누리는 이들. 모을 것도 없지만 남기지 않는 즐김이 없어도 열악해도 행복한지 모르겠다. 도무지 아무 것도 아닌데, 성탄 미사 후의 먹거리 잔치도 없는데 이렇게 없어도 넘치게 즐기는 이들을 보며 루돌프 산타 할아버지도 봇짐풀이를 잊어버리고 같이 놀다가는 성탄인지 모르겠다. 주고받는 선물이라고는 즐거운 몸짓뿐인데 그것만으로 충분한 성탄이다. 참 이상하다. 허전하면서도 충만한, 참으로 묘한 성탄이다.

 

뒷짐지기: 2016년 1월 5일

조금은 조심스런 모습이다. 어디 팔자 한번 좋구나. 난 잘 모르겠으니 너나 잘해 봐라. 계속 달리는, 달려야 하는 이들에게 뒷짐지기는 금기사항일지 모르겠다. 가끔은 뒷짐이 참 좋다. 거만함이 아닌 잠시 물러섬이다. 뒷짐을 지고 걸어보면 빠름에 놓쳐버린 느림의 기쁨이 있다. 하늘을 보게 하고 주변을 살피게 한다. 뒷모습을 닦으며 앞길을 열어 준다. 해질 무렵 땅거미가 드리울 때 뭇사람들이 다들 제 갈 길로 바쁠 때, 뒷짐지고 걸음은 참 행복한 순간이다. 뒷짐진 손에 묵주를 들면 금상첨화다. 힘겨움은 당당한 즐거움으로 갈아입고 꼬인 실타래는 기다림의 지혜를 얻는다. 내가 여기 있음이 그저 고마움이 된다. 이렇게는 결코 달릴 수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힘껏 달릴 힘을 준다.

 

흔한 그리움: 1월 8일

너무 흔해서 푸대접 했는지 모른다. 손만 뻗으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빡빡한 삶의 서리에 늘 가까이 있었지만 그 고마움을 모른 채 이토록 감미로웠던가 싶다. 혀를 살짝 내리 감싸는 따스함과 지근한 머무름의 향과 크림의 부드러운 엉김이, 헤픈 설탕의 달짝지근함이 인스턴트커피의 깊은 품향이다.

늘 가까이 있었던 것이, 그래서 떨쳐버리고 싶었던 것들이, 지긋한 몸 설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있다 없으니 그립기 짝이 없다. 품격을 높인 커피들이 판치는 요즘, 그 놀음에 나 또한 즐겼었지만 이도 저도 떠난 사무침으로 물러서니 늘 가까이 있었던, 그래서 소중한지 몰랐던 네가 너무 고마운 오늘이다. 한국인의 커피는 누가 뭐래도 봉지믹스커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