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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다양한 것들의 조화, 그 아름다움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실장

 

얼마 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선교를 떠나는 후배 신부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거기엔 병원사목을 하는 후배와 서품 받은 지 1년도 안 된 보좌신부 생활을 하는 후배도 함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제가 되어 하느님 나라의 사업을 하겠다는 뜻은 같았지만, 너무나 다른 자리에서 다른 모습으로 일하며 다른 고민들을 갖고 있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하느님 나라의 일을 하고 있겠지요. 각자 다른 색과 밝기로 빛을 밝히고 있겠지요. 하지만 이 다양한 모습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갑니다. 그 축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며 각자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현실을 돌아보면,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는 관계 맺기를 꺼려하며 자기 세계를 구축해서 간섭받지 않고 편하게 살려고 합니다. 나와 잘 맞는 몇몇 사람만 가까이하면서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나의 처지를 힘들어합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지인들의 소식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나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하지요.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는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나는 얼마나 나를 존중하고 믿어 주는지요?

“군자는 긍지를 가지되 다투지 않고, 무리와 어울리지만 파벌을 만들지 않는다.”1)

“군자는 조화를 이루지만 획일적이지 않고, 소인은 획일적이고자 할 뿐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2)

공자의 말씀입니다. 군자는 자기 존재의 고유하고 존엄한 특성을 잘 압니다. 도덕적인 의지와 선한 본성을 가진 스스로에 대해 강한 긍지(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남과 비교하며 나보다 낫다하여 시기하지 않고 나보다 못하다하여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다투지 않고 상대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받아 줍니다. 그러면서도 군자는 혼자서 독야청청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무리와 어울리며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파벌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파벌은 이익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형성하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자는 획일적으로 모든 것이 우리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피합니다. 오히려 나와 다른 다양한 것들의 조화를 추구합니다. 사제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목을 하듯이, 우리 신자들이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듯이 각기 그 모습과 방법과 삶의 자리는 다양하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 가는 모습은 아름답게 드러날 것입니다.

 

1) 『논어』 「위령공」 21. “君子矜而不爭, 群而不黨.”

2) 『논어』 「자로」 23.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