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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10년이라는 시간


글 이관홍 바오로 신부 | 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지난 8월 13일, 대안성당에서는 약 600명의 베트남 신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미사 전에 베트남 신자들은 성모상 앞에서 말씀의 전례와 율동 찬양을 한 다음, 꽃가마에 성모상을 모시고 성전으로 입당하는 예식을 하였습니다. 이날 미사에는 대구 지역의 베트남 신자들뿐만 아니라 경주, 구미, 부산, 울산, 창원, 마산 등지에 거주하는 베트남 신자들도 참례했습니다.

베트남 신자들이 원래 성모 신심이 깊은 것도 있지만, 특별히 성모 승천 대축일이 대구 베트남 공동체의 주보 축일이고 공동체의 설립일이라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내년이면 대구에 베트남 공동체가 설립된 지 10년이 됩니다. 베트남 공동체에서는 올해부터 10주년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행사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봉헌을 하고 베트남 현지 주교님들과 여러 신부님들을 초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 한 해 그 어느 때 보다 열심히 기도하자고 다함께 결심도 했습니다.

대구 베트남 공동체는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아주 초라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소수의 베트남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집이나 공장에 삼삼오오 모여서 미사 대신 공소 예절을 하거나 흩어져서 인근 본당에서 미사에 참례하다가 2008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부산에서 베트남 신부님을 모시고 와서 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처음으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 것이 공동체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구·경북 일대의 신자들이 다 모여도 100명이 채 안 되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500명이 넘는 큰 공동체로 성장하였고 대구 베트남 공동체를 시작으로 경주와 구미에도 베트남 공동체가 설립되었습니다.

 

많은 수가 미등록 체류자(불법 체류자)라는 불안정한 신분이지만, 그래도 주일이면 미사에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참례하여 서로 돕고 사랑을 나누면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동체를 성장시켜 온 것입니다. 중간에 부산에서 한 달에 한 번 미사를 봉헌해 주시던 베트남 신부님께서 귀국하시는 바람에 미사를 봉헌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고, 미사에 참례하러 오던 공동체 간부들이 출입국 사무소 직원들에게 단속되어 강제추방 당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신앙의 힘 하나로 공동체를 이끌어 온 베트남 신자들의 모습이 참 대견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서 나그네의 여정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울러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셔서, 대구뿐만 아니라 구미와 경주에서도 매주 주일 미사를 봉헌해주시는 짜우 신부님과 늘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이주민들을 돌보아 주시는 탄마이 수녀님의 헌신으로 공동체는 영적으로 더 풍요로워지고 더욱 더 탄탄한 공동체로 계속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국민성 자체가 서로 잘 뭉치고 단합이 잘 된다고 하지만, 신앙이 없었다면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베트남 공동체 간부들은 언제나 저를 보면 손을 잡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봐주세요.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부탁을 합니다. 오히려 제가 신심 깊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신앙의 힘을 느끼는데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고된 한 주를 보내고, 때묻은 작업복을 벗고 전통의상을 입고 밝고 환한 얼굴로 목청껏 성가를 부르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베트남 미사때 성체분배를 하다 보면, 손가락에 깊은 상처의 흉터가 있거나 손가락이 잘린 베트남 신자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 상처 입은 손에, 그 잘린 손가락으로 모셔지는 예수님의 몸은 그들에게는 삶의 가장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됩니다. 공간적인 제약이 있어 그들의 신앙생활과 친교를 모두 다 도와주지 못해 저는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들과 함께 다가오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모두 다 해결해주지 못함에 한계를 느끼기도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것과 그들을 환대하고 배려해주는 것은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 우리가 믿는 하느님과 똑같은 하느님을 환대하는 것입니다. 대구 베트남 공동체가 앞으로 더욱 더 하느님 안에서 내적·외적으로 성장하여,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고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