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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청소년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내 기억의 큰 부분으로 자리할 성지순례


글 김성덕 시몬 | 형곡성당, 고2

 

8월 7일(월)부터 12일(토)까지 일본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처음 떠나는 해외 성지 순례여서 그런지 출발 전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기대가 큰 만큼 안전에 대한 문제도 있었지만 너무 설레어서인지 그런 문제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사전 모임 때 다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어떻게 하면 이 친구들과 친해질까?’ 라는 생각만 들었다. 성지순례 출발지는 부산항. 5박 6일간 한국과 떨어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우리는 부관훼리라는 큰 배를 타고 부산항을 떠나 시모노세키항을 향해 출발했다. 저녁을 먹은 뒤 방 안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반응과 기대감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그날 배 갑판에서 처음 보았던 부산대교와 야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둘째 날, 일본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해서 입국수속을 하고 버스를 타고 나가사키항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도중 버스 안의 에어컨이 고장 나서 덥고 습한 일본의 날씨를 그대로 맞으니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점심을 먹고 쾌속선을 타고 후쿠에항으로 이동한 뒤 고토에 있는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젊은 부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방 배정을 받고 저녁식사를 한 다음 미사를 드렸다. 14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하니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기만 했다. 미사 후에 저녁 프로그램을 위해 한 방에 모이니 더 어색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2학년 형인 나는 최선을 다해 친구들의 어색함을 달래려 노력하면서 길고 긴 하루를 보냈다.

 

셋째 날, 고토에 있는 성당들을 하나씩 순례했다. 먼저 미즈노우라 성당으로 향했다. 미즈노우라 성당은 1880년에 만들어진 하얀색 대형 목조 성당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새하얗게 만들었다. 다음은 쿠스하라 성당이었다. 쿠스하라 성당은 1912년에 세워져 고토에서는 세 번째로 오래된 건물이었다. 외부의 빨간 벽돌과 대조적인 내부의 하얀색 박쥐 천장, 일명 리브볼트 식의 천장은 굉장히 오래되어 보였다. 다음은 토자키 성당으로 가보았다. 고토에서 가장 오래된 토자키 성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신청해 놓은 상태란다. 빨간색 벽돌로 1879년에 지어진 토자키 성당은 특히나 오래된 성당이어서 주변 지역의 박해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

이렇게 오전 순례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타카하마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는데 해수욕장의 하얀 모래가 인상적이었다. 마침 우리가 찾은 날이 태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 간 뒤라 깨끗한 날씨에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물놀이를 하면서 함께한 친구들과 더욱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또 해수욕장 파도의 높이가 여느 워터파크보다 높게 10초마다 우리를 덮쳐 무척 즐거웠다. 모두들 재미있게 놀고 짐을 챙긴 다음 숙소로 돌아와 바비큐 파티를 했다. 일본에서만 맛 볼 수 있다는 채소를 먹고 신부님과 선생님, 그리고 신문사 팀장님께서 구워주시는 고기를 먹으며 내가 성지순례를 온 건지 관광을 온 건지 모를 정도로 맛있게 잘 먹었다. 그렇게 세 번째 날이 지나갔다.

 

넷째 날, 우리는 고토에서 나가사키로 이동하여 26성인 기념관 순례를 한 뒤 기념관 옆 성 필립보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26성인 기념관에는 26인의 순교자 중 대표적인 인물로 바오로 미키 수사를 꼽는다고 한다. 무장 집안에서 아버지가 세례를 받으면서 함께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그는 십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교토와 오사카 일대에서 전교활동을 하다가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오사카에서 붙잡혀 니시자카 언덕에서 다른 선교사, 신자들과 함께 순교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현지 가이드를 맡아주신 요안나 선생님의 26성인과 일본 교회의 박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지금 나의 상황이 얼마나 다행인지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다섯째 날, 우리는 이른 시간부터 움직였다. 먼저 순례를 한 곳은 나가사키 교구의 주교좌성당인 우라카미 성당이었다. 그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이 떨어진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이어서 ‘여기애인’의 정신으로 산 나가이 타카시 박사의 생가(집 이름이 ‘여기당’)를 방문했다. 나가이 타카시 박사는 원폭에 피폭되기 전에 이미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피폭되고 죽기 전까지도 다른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이태석 신부님과도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더 아려왔다. 이어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을 방문하였다. 원폭자료관은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02분에 핵폭탄이 떨어져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것을 기리는 역사관이었다. 이 자료관은 핵폭탄이 떨어진 뒤 모든 피해를 한데 모아 방문객들에게 핵폭탄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느끼게 해 주는 곳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사진과 영상을 통해 보면서 조금이나마 그 때의 참상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연한 마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모노세키항으로 이동하여 출국수속을 한 뒤 배에 올랐다.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에 누우려 하니 이렇게 바쁜 일정 속에 지나간 5박 6일의 시간들이 아깝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 선생님, 신부님과의 이번 성지순례가 내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을 것 같아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이 친구들과 선생님, 신부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과 기대감이 스쳐갔다. 이번 성지순례를 이끌어주신 교구 청소년담당 황성재 신부님, 마리아 선생님, 로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또 스콜라티카, 야고보, 안드레아, 요셉, 데레사, 사도요한, 마르코, 아퀼리노, 마르티나…너무너무 고마웠다. 모두들 내 기억 중 아주 큰 부분으로 남을 것 같다. 

“우리는 곧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낯선 이들을 각자의 삶에 추가하게 되겠지. 그러면서 이전의 기억들 중 별 볼일 없는 것들은 새 것들로 자연히 대체 될 거야. 그러나 중요한 기억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남겠지. 삶에서 반복되는 이별을 겪으며 내가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은 사라져도 추억이 남기 때문이야. 사라지지 않을 추억을 선물해 준 너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너희들에게 좋은 사람, 좋은 생각, 좋은 일이 항상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성지순례동안 모든 선생님, 신부님, 우리 친구들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