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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耳順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실장

 

2017년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가오는 성탄과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통(疏通)’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關係)’의 문제지요.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살 수는 없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는 관계라면 괜찮지만, 가족이나 직장 동료처럼 가깝고 매일 부딪히는 사이일수록 소통이 잘 되지 않으면 그 관계가 힘들어지고 거기서 받는 상처와 소외감도 더 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예 관계 맺기를 포기하고 혼자 지내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혼밥(혼자서 밥 먹기)’과 ‘혼술(혼자서 술 마시기)’을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거기 맞춘 식당과 술집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관계를 잘 맺고 산다는 것은 소통이 잘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소통은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나도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상대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내 말만 앞세우면서 소통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요. 지식을 쌓는 것보다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소통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수록 더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공자는 나이 마흔에 “불혹(不惑, 유혹에 빠지지 않음)”했고, 쉰에 “지천명(知天命, 천명을 앎)”했으며, 예순에 “이순(耳順, 귀가 순해짐)”이라고 했습니다.1) 여기서 “이순(耳順)”을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된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지성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듯합니다. ‘귀가 순해졌다.’는 말은 다른 이의 말이 내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불혹”과 “지천명”의 단계를 훨씬 넘어선 공자가 예순쯤 되어서야 비로소 ‘귀가 순해지는’ “이순”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는 것을 봐도 이순의 경지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순’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깊이 하늘의 뜻을 알아(知天命) 이것이 몸에 배어들어 온전히 내 것이 되면 비방과 칭찬, 영화와 오욕의 말이 그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 없다. 그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 없으면 곧 그 귀에 거슬리게 할 수 없으니, 이를 두고 ‘이순’이라고 한다.”2)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것도, 경험한 것도 많아집니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도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마음이 상하고 아예 귀를 닫아 버립니다. 귀가 순해지기는 커녕 딱딱하게 굳어 버리지요. 관계가 닫히고 소통이 끊어진 오늘날의 세상에서 우리는 입을 닫고 귀를 좀 더 부드럽게 해서 타인의 목소리를 들어야겠습니다. 입이 내 생각이나 판단을 세상으로 보내는 문이라면, 귀는 나의 열린 마음이 세상과 소통하는 문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듣고 더 적게 말하라는 의미로 귀는 두 개, 입은 하나인가 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 나의 바람이나 넋두리만 늘어 놓기보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분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일방적이어서는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겠지요. 성탄을 준비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의 귀(耳)는 얼마나 순한지(順)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1) 『논어』 「위정」 4. “吾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2) 정약용 『논어고금주』 「위정」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