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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한 해를 마무리하며…


글 이관홍 바오로 신부 | 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12월은 우리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을, 성탄을 기쁘게 맞이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고, 기대와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주민들도 우리와 똑같은 마음으로 분주한 12월을 보냅니다. 때로는 12월이 이주민들에게는 가혹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유난히 12월에는 임금체불이나 퇴직금 상담이 많습니다. 한 해가 지나가기 전 밀린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아야만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보낼 수 있고,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소박한 크리스마스 파티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들 하는 요즘, 이주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많은 중소기업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밀린 임금을 정산해주고 싶어도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난감해하는 곳도 많습니다.

또한 이주민들에게 12월의 겨울 추위는 견디기 힘든 것 중 하나입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겨울의 추운 날씨를 경험해보지 못한 필리핀, 베트남, 동티모르 등의 국가에서 왔습니다. 한국에 체류한 지 10년 가까이 되어도 추운 겨울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고 합니다.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10월부터 미사 시간에 이주민들의 기침소리가 유난히 많이 들립니다. 때로는 초가을에 감기에 걸렸지만 병원도 가지 못하고 참다가 폐렴이 되는 경우도 자주 봅니다. 병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약국에서 감기약만 사 먹으면서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일을 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쓰러워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 

12월, 추운 날씨와 밀린 월급과 퇴직금에도 불구하고 이주민들에게는 예수님의 성탄이 큰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됩니다. 필리핀 공동체든 베트남 공동체든 동티모르 공동체든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성탄을 준비합니다. 구유를 어떻게 꾸밀까 고민을 하고, 파티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미사를 어디서 어떻게 봉헌할까 등을 고민합니다. 그렇게 성탄을 준비하는 시간만큼은 여러 가지 근심과 걱정을 잊고 기뻐하게 됩니다.

이주민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특히 이주민 신자들은 우리와 똑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고,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지,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또 신앙인입니다. 이주민들의 다름은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조금 더 넓게 해줍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주민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우리에게 복음을 실천하고 증거할 기회를 줍니다. 이방인과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구약성경에서부터 강조되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주 확실하고 명확한 하느님의 가르침이고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저 역시도 그동안 만났던 이주민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수갑을 찬 손으로 아기를 안고 비행기를 타던 모습, 뇌경색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려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던 모습,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졌지만 사산되어 작은 박스에 아이의 사체를 넣고 흐느끼던 엄마의 모습, 뺑소니 사고를 당했지만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신고도 못하고 병원조차 못 가고 끙끙거리며 아픔을 참던 모습, 산업 재해로 프레스기에 손목이 잘려 나갔지만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고민하던 모습…. 

앞으로도 다양한 사연의 이주민들이 다양한 어려움을 가지고 가톨릭근로자회관을 찾을 것 입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가톨릭근로자회관의 직원들은 계속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이주민들에게 가톨릭근로자회관은 미사를 봉헌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장소인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담소 역할을 하며,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사랑방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가톨릭교회가, 그리고 대구대교구가 이주민들과 함께 한다는 하나의 큰 상징이 됩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애독해주신 〈빛〉 잡지 독자 여러분과 대구대교구 모든 신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주민들이 보다 인간다운 삶, 존중받고 사랑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관심,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주민을 위한 기도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저희와 함께 살아가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고국과 가족을 떠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주민들을 위하여 기도드리오니

세상에 만연한 차별과 편견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주민들을 위로해주시며,

빈곤과 폭력과 박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땅으로 인도해주소서.

또한 우리 모두가 이주민들과

서로 한 형제임을 깨닫고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서로를 환대함으로써

정의와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일치의 성령을 보내주소서.

이 땅에서 이주민과 난민으로 살아가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이주민을 위한 한국 천주교회 공식 기도문, 2017년 춘계 주교회의 승인

 

*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는 이번 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좋은 글 보내주신 이관홍 신부님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