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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사랑실천(Caritas)은 먼저 정의를 요구한다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내가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싶다.”, “늦잠 잘 수 있는 시간은 7시까지”, “나만의 냉장고가 있어서 내가 먹고 싶은 간식(음료, 과자, 빵 등) 보관하기”, “소일거리 갖기와 텃밭 화단 가꾸기”, “내가 사고 싶은 물품을 자유로이 외출해서 구매하고 싶다.”,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대로 놔두기”, “내 돈은 내가 관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머리 감을 때 린스도 사용했으면 좋겠다.”, “식사 할 때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내 행동에 대해 참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나의 의사를 존중하고 늦어도 내가 결정하고 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외부에서)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

이것은 “만약 당신이 근무하는 시설에서 다섯 달을 살아야 한다면, 꼭 요청할 다섯 가지?”라는 질문에 노숙인 주거시설 직원들이 한 대답이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요청을 할 것이다. 이 요청이 채워질 수 없는 꿈이라면 누구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실패하여 다시 시설에 들어올망정 사회에 나가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당연히 따라온다.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히 가지는 기대는 인간 본성이 요청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정의가 인간 “본성에 따라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조건”(『가톨릭교회교리서』, 1928항)이라면 이런 삶의 조건을 초래하는 정책과 법률은 정의로울 수 없다.

많은 카리타스 동료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며 먼 곳을 바라보든지 고개를 떨구게 된다. 가끔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런 현실을 자기 탓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려고 사회복지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나름대로 애쓰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어쩌지?’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이 작업을 할 때마다 먼저 그런 삶의 조건 아래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죄송하고, 다음으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어보려 애쓰다 지친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지치게 만드는 조건이 변화 없이 계속되면 체념하게 된다. 체념이 반복되면 무감각해진다. 무감각해지면 불의한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지치게 만드는 조건을 만든 것은 그들이 아니다. 그래서 이 안타까운 상황도 그들만 책임질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성찰되지 않은 우리나라 복지정책과 노숙인 복지시설 주민들을 사회 밖으로 쫓아낸 우리 사회의 문화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이런 요청을 기록한 직원들도 그 집 주민들과 함께 그들을 위해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작업을 했던 주거시설 주민 대부분은 먹고 입는 일상생활에서부터 도움이 필요한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다. 그런데 노숙인 주거시설이기 때문에 주민 50명에 생활지도원 1명만 배치된다. 도울 사람은 적은데 도움 받을 사람은 많으니 시간에 쫓기고 개인 바람을 존중할 여유가 없다. 외부 조건은 안 바뀌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도움을 제공하기 위한 계획서와 결과보고는 해야 한다. 정의롭지 않은 현실은 실제 삶에서보다 서류 위에서 개선되고 있다. 이른 바 “A4복지”다. 이 세미나 참여 동료들은 주민들에게 그들이 본래 가진 권리를 실제로 되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주민 10명당 1명의 생활지도원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 주거시설로 바꾸어 달라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요청했다.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등의 이유로 그 요청을 거부했다. 나라와 사회가 이 시설 주민에게 비슷한 처지인 장애인 거주시설 주민보다 덜 인간다운 삶의 조건에서 살도록 강요한 것이다. 동료들의 궁극적인 꿈은 주민들이 시설을 떠나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자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자립생활이 물고기라면 경제적 빈부와 신체적, 정신적 강약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는 마을은 물이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죽는 것이 당연하다. 그 세미나를 마치며 동료들이 가톨릭노숙인복지협회 차원에서 우리가 내는 세금을 노숙인 주거시설 주민들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써달라고 서명운동을 벌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숙인 시설에 사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상황을 알려 함께 참여할 것을 호소하자고 했다.

2014년에 나온 국제 카리타스 윤리강령은 가톨릭교회 사랑실천 조직(Caritas)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첫 가치로 ‘정의’를 꼽고 있다. 정의란 우리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맺고 공정하고 도덕적인 질서”를 세워가기 위한 노력이다. 구체적으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계속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와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변혁시키는데 도움을 주면서, 가난과 소외로 내모는 원인에 항변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동반”하는 것을 가리킨다. 노숙인 주거시설 주민들 상황을 더 정의롭게 바꾸는 노력은 그들을 옹호하는 온라인 의견에 ‘좋아요’ 누르기와 직접 글 혹은 댓글 올리기, 관련 여론조사 때 의견 표명하기, 그들의 사정을 더 잘 대변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알리고 그렇게 투표하기, 서명운동 참여하기 등을 통해 정의 구현에 참여할 수 있다. 이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한 “실재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 231-233항)는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천사 같은 순수주의, 상대주의의 독재, 공허한 미사여구,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 반역사적 근본주의, 선의 없는 도덕주의, 지혜가 없는 지성주의”를 거부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가톨릭 사회복지 현장 일선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특별한 역할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체험하는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삶 속의 기쁨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사회에 알려 사회 전체가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울 책임과 의무가 있다. 교회 지도자가 그들에게 더 쉽고 완전하게 해야 할 역할을 할 수 있게 장려하고 기회와 제도를 마련해준다면 더 기쁜 일이다. 교회 모든 구성원은 그들의 이야기를 귀여겨 듣고 함께 고민한 후에 각자가 원하고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노숙인 주거시설 주민을 위한 행동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초대인 동시에 그들의 의무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 “사랑의 문명(civilisation of love)”을 이루어가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고, 사랑은 정의를 전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