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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사람, 사랑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예전에 「못자리」라는 우리 교구 신학생들의 소식지가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 때 「못자리」에서 읽은 글 한 부분이 기억납니다. 누가 썼는지, 글 전체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글자와 ‘사랑’이라는 글자가 매우 닮았는데, ‘사람’이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ㅁ’이 ‘ㅇ’으로 바뀌면 된다. ‘ㅁ’이 ‘ㅇ’이 되려면, 즉 모난 네모가 둥근 동그라미가 되기 위해서는 두 네모가 부딪혀 깎여 나가고 닳아서 둥글둥글해져야 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나와 모든 것에서 잘 맞는 사람이 있을까요? 맞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요. 맞지 않는다고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 피한다거나 나 홀로 살겠다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할 겁니다. 자꾸 만나 서로의 모난 부분은 깎이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지면서 관계를 이어 나가면 동그라미가 서로 상처주지 않고 잘 받아들이듯 사랑하는 관계가 되겠지요.

요즘은 자기와 불편한 관계를 맺어 나가기를 꺼리는 경향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문자는 주고받아도 직접 통화하기는 싫어합니다. 그러니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건 더 부담스러워하지요. 편한 친구 관계가 아니라 직장 상사나 잘 모르는 사람들과 업무 때문에 연락해야 하는 것이라면 더 꺼려집니다. 만나는 것보다는 간단히 메일이나 문자로 필요한 말만 주고받으려 하지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싫은 일은 안 하려고 합니다. 관계도 그렇습니다. 편하고 자신과 잘 맞는 사람과만 관계 맺고 싶어합니다. 부부나 친구 사이에서도 내가 깎이고 손해 보며 힘든 작업을 해야만 하는 ‘관계 맺기’라면 그냥 회피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홀로 살아가거나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만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깎이고 손해 보는 것을 감수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자는 말과 행실이 바르다면 아무리 문화가 다르고 나와 소통이 안 되는 곳이라도 진실이 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말이 진실하고 믿음직스러우며 행실이 돈독하고 공손하다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 하더라도 행할 수 있으나, 말이 진실하고 믿음직하지 않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공손하지 않다면 자신이 사는 마을이라 하더라도 행할 수 있겠는가?”1)

 

문화와 관습이 다르고 소통하기 어려운 오랑캐의 나라에서도 내가 하는 말이 진실 되고 내 행동거지가 공손하다면 소통이 안 될 리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말에 믿음이 없고 내 행동이 독실하지 않다면 우리 동네 사람들과도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고 관계를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모난 부분을 깎아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나의 모난 부분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으면 좋

겠습니다.

 

1) 『논어』 「위령공(衛靈公)」 5.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 行乎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