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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연민·함께 아파하기(Compassion)에서 시작되는 사랑실천(Caritas)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외부 타일이 떨어져 얼룩진 밝은 연노란색 건물 입구는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출입 통제선이 처져 있었다. 정문 옆에 임시로 낸 문으로 들어갔다. 영하 5~6도 기온에 바닷바람이 차가워 귀마개를 하고 목도리를 여미면서 주변을 보니 본 건물 뒤쪽 벽에도 여기저기 타일이 떨어져 있고, 벌어진 틈도 보인다. 건물 뒤편 솔숲에 회색 컨테이너 10여 개가 띄엄띄엄 놓여 있다. 얼기설기 연결된 전기선을 보고 그곳이 사람이 사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임시 사무실을 가리키는 팻말을 보고 사무실을 찾아가다가 목도리를 단단히 차리고 플라스틱 물통으로 물을 길어오는 남자 분을 만나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임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젊은 남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그의 안내로 붉은 벽돌로 지은 단층집으로 갔다. 회색 체육복에 색이 바랜 청회색 조끼를 걸친 반백의 남자분이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낯익은 분이다. “어서 오세요.”하며 우리 일행을 당신이 쓰는 방으로 안내했다. 붉은색이 섞 인 아크릴 담요 한 장이 덮 여있는 고동색 전기장판과 벽에 걸린 그림 몇 점 외에는 가구도 없는 단출한 이 방에 사는 사람이 들꽃마을을 세운 최영배 신부님이다. 28년 전 고령성당에서 뵈었을 때 신부님은 성당 마당에 천막을 치고 할아버지 몇 분과 같이 살고 있었다. 길에 쓰러진 할아버지 한 분을 보고 그냥 두면 돌아가실 것 같아 모셔 와 보살펴 드렸더니 나중에 그분이 길에서 사는 다른 분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도 신부님은 여전히 그분들을 위해 일하기보다 그분들과 함께 살고 계셨다.

돌아보면 적지 않은 우리 교구 사랑실천 사업과 사회복지사업 시설 대부분이 그렇게 생겨났다. 전쟁 후 가난에 시달리던 우리나라를 찾아온 평신도 선교사들이 있다. 수지 영거 여사와 마리아 헤이센베르거 여사는 어느 저녁 남의 집 문간에서 울고 있는 구두닦이 아이를 만나고 청소년들을 위한 집을 마련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대구 SOS어린이마을과 가톨릭 푸름터가 생겨났다. SOS어린이마을에서 그분들과 함께 일했던 잉에 엘렌캄프(한국명 : 옥잉애) 여사는 동촌에서 시내 중심가로 나오는 택시에서 운전석 옆에 앉은 한 꼬마 아이를 보았다. 햇빛에 그을려 새카만 그 아이가 누군지 기사님에게 물었다. 기사님은 아들인데 집에서 돌볼 사람이 없어 하루 종일 함께 다닌다고 대답했다. 그 만남이 엘렌캄프 여사가 부모가 있어도 자녀를 돌볼 상황이 안 되는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소화어린이집을 세우도록 이끌었다.

마산 가포 국립요양원에서 결핵으로 요양하던 김동한 신부님은 요양원 주변에서 행상을 하던 여인이 쪽방 앞에서 피를 토하고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일이 나중에 그가 대구요양원을 인수해 운영하도록 만들었다. 고령 밀알의 집으로 가는 길에 있던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사는 시설을 눈여겨 보던 박병기 신부님은 운영난에 빠진 그 시설을 인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돈이 없다고 반대했다. 어느 날 저녁, 신부님은 근무를 마친 직원들을 차에 태우고 그 시설로 갔다. 그들은 어두침침한 블록 건물 중앙찜통에서 라면이 다 끓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시설 주민들을 보았다. 조금 후 밖으로 나온 신부님은 직원들에게 “이런데도 인수를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고, 그들에게 동의를 얻어냈다. 그렇게 국제재활원(현 성요셉재활원)을 인수했다.

그 만남의 주인공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지나쳐 가지 않고 다가가 함께 아파한 사람들이다. 함께 아파했기 때문에 이웃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함께 아파하기(Compassion)’는 인간다운 도움을 위해, 특히 그리스도교답게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할 전제조건이고 포기할 수 없는 본질적인 구성요소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카 10,29-37)에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에게 맞아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이 대목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가엾은 마음이 들다’라는 말마디는 사람의 내장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사마리아 사람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내장이 끊어질 듯 아픔을 느꼈다는 뜻이다. 이처럼 함께 아파하려면 상대방과 가깝게 있어야 한다. 고통 받는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 왜냐하면 눈앞에 고통이 보여야 실제로 함께 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함께 아파하기는 자신보다 열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내려다보며 불쌍하게 여기는 감정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감을 ‘자기 탓 없는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나 연령, 고유성, 습관, 사회적 지위나 출신이 비슷한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악을 보고 느끼는 고통의 한 종류’라고 했다. 동시에 사마리아 사람의 함께 아파하기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슷한 사람’이라는 조건을 이웃, 고향 사람, 같은 민족, 같은 성별,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같은 인간이라는 차원으로 확장되어 있다. 그의 함께 아파하기는 ‘사람이 고통 받고 있다.’는 것 외에 어떤 경계나 조건도 없다. 사마리아 사람의 함께 아파하기는 어떤 상황에서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도우려는 동기를 준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가여워하는 마음과 다르다.1) 이런 함께 아파하기는 이성의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락탄씨우스(Lactantius)는 그리스도교의 함께 아파하기를 인간 삶에 관한 이성을 거의 온전히 담고 있는 감정으로 보았다. 그 감정은 다른 동물과 달리 홀로 생존하기 힘든 인간의 궁색함을 서로 돕는 것을 통해 극복해 나가도록 인간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 아파하기를 포기하면 우리 삶이 짐승처럼 되어 버린다고 했다.2) 곧 의식적으로 유지해야 할 덕행이다.

우리 교구의 사회복지시설, 기관, 단체는 자신을 탄생시킨 ‘함께 아파하기’를 얼마나, 또 어떻게 간직하고 있는가? 나는 오늘 들꽃마을의 삶을 보며 함께 아파하는가? 때로 현대 사회복지 환경이 함께 아파하는 태도를 방해하지는 않는가? 복지국가에서 기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받는 도움은 시민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다. 그러니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면 된다. 국가나 사회가 공공 자원을 사용하는 사회복지시설, 기관에게 더 많고 큰 성과를 요구하는 것도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것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함께 아파하는 마음과 태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실천에서 함께 아파하는 마음과 태도를 잃어 버린다면, 비오는 거리에서 우산 없는 사람에게 우산은 나누어 줄 수 있겠지만 함께 우산을 쓰고 비를 맞기는 어렵지 않을까? 지진으로 무너진 집 옆 컨테이너에서 함께 살고 있는 들꽃마을 식구들과 작별하고 나오며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이다.

 

1) 참조.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IX, 5

2) Artikel Mitleid: In: Historisches Worterbuch der Philosophie, Bd. 5, Sp. 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