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필리핀 어학연수기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글 조현제 아우구스티노 |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부 1학년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부 1학년은 겨울방학 때 한 달 동안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와야 한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7명의 신학생은 박광훈(안드레아) 담임신부님과 함께 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오후 9시 22분 김해공항에서 필리핀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해외여행은 두 번 정도의 경험이 있지만 모두 비교적 가깝고 문화도 비슷한 일본을 다녀왔기 때문에 더 먼 곳, 그리고 우리와 문화가 다른 곳으로 간다는 사실에 굉장히 설레였다.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기다리며 이 여정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앞으로 한 달 동안 언어도 시간대도 문화도 계절도 다른 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다.

비행기가 땅에서 떨어진 지 30분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한국이 그리웠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이미 출발한 비행기를 한 명 때문에 돌릴 수는 없다. 게다가 한국에서와 똑같은 경험을 위해서라면 교구가 많은 돈을 들여가며 어린 신학생들을 먼 땅으로 연수를 보낼 이유가 없다. 우리의 어학연수는 단순히 어학연수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어학연수 동안 영어를 배우는 것은 당연하고 해외의 가난한 교회를 체험하며 공동체의 친교를 위함이다. 그렇기에 마냥 설레고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잠에서 깼고 비행기는 도착해 있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사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 내가 필리핀에 간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입고 온 긴팔 옷을 벗고 시원함을 느꼈을 때 비로소 내가 필리핀에 있음을 실감했다. 

우리의 필리핀 여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졌다. 공부와 여행이다. 주중에는 필리핀 따가이따이에 있는 수녀원에 머물며 공부를 하고 금, 토, 주일은 조별로 여행을 다녔다. 주중의 공부는 필리핀 현지의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셨다. 이때 선생님들을 만나고 새삼 깨달은 사실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선생님들은 영어가 모국어다. 이런 사실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선생님들은 영어가 모국어니까 편하게 말씀하시는데 듣는 나는 아니었다. 처음 만나고 수업을 했을 때는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선생님들께서는 우리를 배려해서 굉장히 천천히, 쉽게 말씀해주셨다.

나는 영어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제도권 교육 아래 나름 흥미를 붙여가며 배웠던 과목이 국어와 영어였다. 외국영화도 자막을 안 보고 소리로 들으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현지 영어를 100%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70~80%는 이해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70%는 커녕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보다 더 큰 충격은 문법을 공부할 때 느꼈다. 이 또한 당연한 소리지만 영어문법 역시 영어로 수업했기에 정말로 기초적인 문법, 요즘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이 영어를 시작할 때 배우는 문법을 배움에도 난생 처음 보는 단어에 당황하고 이해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그 역할을 보고서야 이해를 했다. 예를 들면 ‘A’, ‘An’, ‘The’ 같은 것들을 관사라고 부른다. ‘관사’를 뜻하는 영단어는 Article이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모든 수업에서 관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게 무슨 역할을 하는지, 관사의 뜻이 무엇인지는 들었지만 관사가 Article인 것은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나의 문법시간이 어땠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나의 중·고등학교의 영어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 그저 학습과 암기였던 것이다. 이곳에 와서 정말로 영어를 알게 되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필리핀에서 영어를 모른다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비단 총이나 이런저런 무력만이 아니라 정말 조금 더 근본적인 생존, 먹고 자는 것에 관련된 문제들을 영어를 못한다면 해결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영어가 자연스레 늘 수밖에 없다. 이곳에 와서 한 달이나 살았는데 영어가 안 늘었다면 그것은 상당히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영어를 못한다면 당장 밥을 못 먹는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배운 영어를 생존영어라고 부른다.

 

우리의 두 번째 파트인 여행은 총 네 번에 걸쳐 진행됐다. 첫째 주와 둘째 주는 조별여행이었고 셋째 주와 넷째 주는 단체여행이었다. 단체여행은 조금 더 편안히 갈 수 있었다. 담임 신부님께서 함께 계셨기에 안전했고, 이동수단도 편안했다. 조별여행은 단체여행보다는 피곤하고 어찌 보면 조금 더 불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별여행에서 얻은 경험은 필리핀 어학연수 전체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조별여행에서 우리는 필리핀이 어떤 곳인지 조금 더 알 수 있었고, 필리핀의 맨얼굴을 아주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간혹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비교적 친절했고, 자연은 매우 아름다웠다. 상상도 못할 곳에서 상상도 못하는 생활을 꾸려 나가는 아주 가난한 가정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그들은 나보다 많이 가진 것처럼 여유로워 보였고 부자보다 더 부자였다.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갔지만 우리는 영어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필리핀 사람들을 배웠고 필리핀의 문화를 배웠으며 필리핀 그 자체를 배웠다.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 교구가 어린 신학생들을 필리핀으로 보낸 이유를 다시 생각해봤다. 영어만을 배우는 것이라면 한국의 학원에 보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수준을 가르치면서 비행기 값과 이동시간, 숙박비를 아끼는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가 사는 곳에서만 살며 볼 수 있는 것만 보는 곳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 그곳에 있었기에 교구에서 신학생들을 그곳에 보냈을 거라 생각한다. 미래의 신부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조현제 아우구스티노에게 이번 필리핀 어학연수는 아주 큰 영항을 끼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배우는 방법을 배웠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귀한 여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