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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당 봉헌 100주년의 해(1918~2018)
제1회 레지오마리애 성모의 밤


글 이찬우 타대오 신부 | 교구 사료실 담당 겸 관덕정순교기념관장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성모 성월입니다. 성모당에서는 5월 한 달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성모의 밤이 열립니다. 문득 ‘성모당에서 성모의 밤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5월을 성모 성월로 지내게 된 것은 13세기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런 관습이 정착된 것은 17세기 로마에서 예수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성모 성월을 지내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5월을 성모 성월로 지낸 것은 오래 전의 일일 것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천주교가 전래되고 얼마되지 않아 한국의 신자들에게도 성모신심이 불붙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모당에서 거행된 ‘성모의 밤’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제가 더 자세한 자료를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가톨릭 신문 1949년 6월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5월 29일은 성모 성월의 마지막 주일이었습니다. 이날 계산동 소년소녀들이 올해 벌써 다 지나가는 아름다운 성모 성월을 위해 성모당에서 성모상 행렬을 거행했습니다. 성모당에서 성모 성월의 성가를 제창하고, 성모 찬송의 시 두 편을 읊고 성모님께 꽃다발을 바쳤고, 그 다음으로 지도 신부인 신상조 신부의 훈화가 있었습니다.

이후 학생들은 성모기와 꽃으로 곱게 꾸민 성모상을 다시 받쳐들고, 교구청 내를 행렬한 후에 샬트르 수녀원 앞 정원에서 무사히 행렬을 끝마쳤습니다.… 참가자는 계산동 소년소녀회원과 수녀원 수녀님들과 백합 보육원 원아들과 대명동 교리반 아동들과 일반신자들 합하여 무려 5백명 이상이나 되어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필자가 현대문으로 고침)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오늘날 성모의 밤과 비슷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성모 성월 찬가, 성모 찬송 시낭송, 행렬이 그것입니다. 이 행사는 일회성의 행사로 그쳤지만 각 본당에서 성모의 밤과 비슷하게 행사를 하긴 했습니다. 그리고 1952년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성모당에서 평화기원신심행사로 ‘성모의 밤’ 기도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하지만 교구에서 하는 성모당에서의 성모의 밤은 1957년이 처음이었습니다. 1957년 5월 30일 레지오마리애 주최로 제1회 성모의 밤이 성모당에서 열렸습니다. 약 1천여 명의 신자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1회 성모의 밤 사진은 없습니다. 대신 사료실에는 ‘제1회 레지오마리애 성모의 밤’이라는 글과 함께 1961년에 있었던 성모의 밤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대구대교구에 레지오가 도입된 것은 1957년 1월 3일 왜관성당 ‘종도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만들어지면서입니다. 사진의 정면에 보이는 ‘다위의 적루’라는 입간판의 이름은 주교좌계산성당에 만들어진 레지오마리애 쁘레시디움으로 1957년 2월 4일에 만들어졌고, 대구 시내 본당에서 처음으로 생긴 쁘레시디움입니다. 그리고 성모상 바로 아래의 ‘평화의 모후’는 1957년 10월 18일 김천성당에 만들어진 쁘레시디움이고, 좌측의 ‘상지의 좌’는 1957년 9월 8일 김천성당에서 만들어진 쁘레시디움이며, 맨 우측의 ‘하늘의 문’은 대구 최초의 소년 쁘레시디움으로 1958년 4월 1일 남산성당에 만들어진 쁘레시디움입니다.

제1회 사진을 구해 볼 수는 없지만, 1961년 사진을 보면 어린 학생들과 어른들이 성모당에 가득 앉아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들은 왜 그곳에 모였을까요? 아마도 청할 것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모 성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성모당을 찾습니다. 거의 5월 한 달 동안 2~3만 명의 신자들이 성모당을 찾습니다. 레지오마리애 단원들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찾는 분들도 많고, 그 중에는 매일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특별히 성모 성월에 성모님께 간구를 청하기 위해서라 생각합니다.

성모당에서 성모의 밤은 지금부터 약 45년 전인 1973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대구 시내 본당별로 돌아가면서 성모당에서 성모의 밤을 지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구 시내 본당 수가 많지 않아서 1~2년에 한번정도 성모당에서 성모의 밤을 했지만 요즘에는 본당 수가 많아져서 4~5년에 겨우 한 번 성모당에서 성모의 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일 예식을 맡은 본당의 전례봉사자들과 성가대 대원들은 오후 7시 30분에 예식이 시작하는데도 불구하고 5시부터 나와 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자주 하지 못하는 성모당에서의 성모의 밤을 조금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서일 겁니다. 본당별로 성모의 밤을 거행하는 방식도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만 대부분 비슷한 예식으로 진행됩니다.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성모 동굴 안이 각 본당과 단체에서 봉헌한 꽃들로 점점 들어차는 모습을 보면 성모 성월이 무르익어감을 느끼게 됩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성모 성월의 광경이 있습니다. 성모당 근처에 있는 유치원생들이 선생님들의 손에 이끌려 성모당에 왔을 때였습니다. 재잘대며 들어서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런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자그마한 아이들이 각자 준비해 온 종이로 만든 장미꽃, 그리고 성모님의 얼굴을 크레파스로 그려온 종이였습니다. 저는 그 종이꽃을 자그마한 꽃병에 담아 5월 한 달 내내 성모 동굴에 두었고, 성모님의 얼굴 역시 비에 젖기 전까지 성모 동굴 한켠에 두었습니다. 사실 본당과 단체에서 봉헌한 아름다운 꽃과 화분이 많았지만 제 생각에는 그 꽃보다 예쁜 꽃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그마한 아이들이 각자 만들어서인지 제각각으로 생겼지만 말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고 성모 성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은혜롭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즐거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성모당에서 주님께 청원하고, 성모님께 간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어려움에 봉착해서 매달리는 이도 있을 겁니다. 그들을 기억하면서 성모 성월을 보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