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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예수님이 만나던 사람들, 그들 관점을 만나자!
- 약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Preferential Option for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약자의 눈으로 보기

“인민학교 3학년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이 노래를 불러 주세요!”라는 판사의 질문을 통역하는 순간 옆에 앉은 사람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렇게 거짓말이 드러나는구나 싶어 통쾌하다. 이곳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행정법원 난민자격 심사장이다. 내 앞 재판정 위에 판사가 앉아 있고, 나의 오른쪽에는 법원 서기가, 그리고 왼쪽에는 난민자격심사를 신청한 두 남자가 앉아 있다. 나는 판사를 돕는 통역으로서 판사가 난민자격을 신청한 사람이 실제 북한 출신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려내는 것을 도와야 한다. 1990년대 후반 대홍수로 북한 경제사정이 아주 힘들었고, 북한 인권상황에 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아져 북한 출신 난민에게는 쉽게 난민자격을 주었다. 먼 독일에도 북한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난민신청자가 몰려왔는데, 그 가운데에는 중국 동북지방에 거주하는 조선족이 북한 난민행세를 하며 난민신청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결국 그 두 사람은 북한 출신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들었다. 법원 통역은 꿀 아르바이트다. 시급도 좋고 교통비까지 후하게 주기 때문에 두세 번만 해도 한 달 식비를 벌 수 있다. 사실관계를 밝히는 일이니 기업 관련 통역을 할 때처럼 말장난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마음이 무겁다. 왜 그럴까? “나는 누구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가? 내 직업은 누구의 편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라고 요구하는가?”, “예수님이라면 누구의 관점에서 이것을 볼 것인가?”하는 물음이 내 안에 갈등을 일으켰다. 독일 국민이 낸 세금을 법률이 정한 목적대로 쓰기 위해 난민자격을 엄정하게 판단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 판사와 독일 국민 관점에서 보면 두 명의 난민자격 신청자는 자격 없이 무임승차를 하려는 사람이다. 난민자격 신청자 관점에서 볼 때는 가난한 고향을 떠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먼 나라로 와서 자기 손으로 일해 더 나은 기회 를 만들고 싶은 노력이 거절당한 것이다. “나는 누구의 관점에서 이 상황을 볼 것인가?”라는 물음은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담고 있는 첫 요구다.

 

약자를 위한 도덕적 관심

  그 후 한 중국 유학생에게 프라이부르크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난민수용소에서 북한 출신 난민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작정 그 난민수용소를 찾아가서 북한 출신이라는 이십대 초반의 청년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무표정했고 말수도 적었다.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했다. 두 번째 방문때 깍두기를 담아가서 함께 밥을 해먹었다. 만남이 거듭 되면서 수용소 밖으로 산책도 하고 바깥 식당에서 밥을 사먹기도 했다. 어느 날 라인 강변을 산책하다가 낭떠러지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굽어보면서 두만강을 건너온 후 헤어진 자기 부모님과 동생 이야기를 했다. 독일로 망명을 할 수 있게 되면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돈을 벌어야 가족을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더 나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지나간, 아니 여전히 계속되는 아픔을 되씹는 그의 처연한 눈길이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만들었다. 외국 유학생에 불과한 내가 난민자격심사를 기다리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몇 다리 건너 아는 분께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지만 그 청년이 북한 출신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며 거절했다. 여름방학 때 귀국했다가 독일로 돌아갔을 때 행정법원이 그의 난민자격신청을 거부했고, 그는 제3국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청년처럼 사회의 변두리에 밀려나 있는 사람들의 요구를 귀기울여 듣고 함께 아파하며 돕는 일이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요구하는 두 번째 요구다. 비록 그것이 기대하는 결과를 맺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약자와 함께하는 “해방”의 노력과 역량 강화 

나를 비롯해 그를 찾아가던 다른 유학생들을 만나면서 그 청년이 조금씩 달라졌다. 두 번, 세 번 만나면서 무표정하던 얼굴에 웃음기가 생겨났다. 우리와 대화도 나누고, 자신이 먼저 우리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준비해 우리를 초대하기도 했다. 식료품 구입 같은 사소한 부탁도 했다. 나중에는 난민자격심사 준비과정과 탈락할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도 해왔다. 조금씩 자기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고 싶은지,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할지 스스로 생각했다. 마지막에는 독일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서 난민자격심사를 다시 신청하겠다는 결정까지 한 것이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갔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세 번째 요구다. 당사자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펼쳐 가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사회에서 그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지도록 돕는 것이다.

그 청년의 그런 변화가 부담스러워지기도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의논할 때 서로 생각이 다른 경우가 늘어났고, 내가 그의 기대를 채울 수 없는 경우가 점점 잦아졌기 때문이다.

부담을 느끼게 된 것은 그의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마치 내가 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고 착각한 데에 문제의 원인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능력과 사랑 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인하려 했다. 불편한 상황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고, 내 역량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진 상대방 탓이라고 하고 싶었던 것이다. 요즘도 자주 비슷한 유혹을 경험한다.

   그래서 자주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왜 약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을 해야 하니?” 교회의 공식 가르침은 “가난한 사람이 되시어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 곁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복음의 기쁨』 186항)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하느님께서 친히 ‘가난하게 되실’ 정도로 하느님의 마음속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있고, 구원이 “거대한 제국의 변두리 작은 마을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처녀가 말한 ‘예’를 통하여” 우리에게 왔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복음의 기쁨』 197항) 그래서 교회도 “인간의 연약함으로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또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습을 알아보고, 그들의 궁핍을 덜어 주도록 노력하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8항) 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실제로 진심으로 가까이 있는 것에서 출발”하며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도록”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강조한다.(『복음의 기쁨』 199항)

그런 뜻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약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도덕적, 윤리적 권고를 넘어간다. 오히려 내가 가난한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드러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믿는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지를 보여준다.